“가방에 복음서를 넣고 다니며 틈날 때마다 읽으세요. 우리 인생에 중요합니다”
교리 교육: 성령과 신부. 하느님 백성을 우리의 희망이신 예수님께로 인도하시는 성령
3. “성경은 전부 하느님의 영감으로 쓰인 것이다.” 하느님 말씀을 통해 하느님 사랑을 알기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세요!
우리의 희망이신 그리스도를 향하도록 교회를 인도하시는 성령에 대한 교리 교육을 이어가겠습니다. 성령은 길잡이이십니다. 지난 교리 교육에서는 창조 사업 안에서의 성령의 역사하심을 묵상했습니다. 오늘은 ‘계시’(啓示, rivelazione) 안에서의 성령의 역사하심, 곧 하느님의 계시 가운데 대표적인 성경 안에서 성령의 역사하심을 살펴봅시다. 성경은 하느님의 영감을 받은 권위 있는 증언입니다.
바오로 사도가 티모테오에게 보낸 둘째 서간에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성경은 전부 하느님의 영감으로 쓰인 것이다”(2티모 3,16 참조). 신양성경의 또 다른 구절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예언은 결코 인간의 뜻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성령에 이끌려 하느님에게서 받아 전한 것입니다”(2베드 1,21). 이것이 바로 성경이 성령의 영감(靈感, Inspiration)을 받아 기록된 하느님의 말씀이라는 가르침입니다. 우리는 성찬례 중 ‘신경’(Credo)을 통해 “성령께서는 (…) 예언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셨나이다”라고 신앙을 고백합니다. 성경은 성령의 영감을 받아 기록되었습니다.
성경에 영감을 주신 성령께서는 또한 성경을 설명해 주시고, 성경을 영원히 살아 있고 활동적으로 만드시는 분이십니다. 성경이 ‘성령의 영감을 받아’ 기록되었지만, 동시에 성경을 잘 해석할 수 있게 ‘영감을 주시는’ 분도 성령이십니다. “성경은 하느님께 영감을 받아, 영원토록 한 번 기록되어 하느님 자신의 말씀을 변함없이 전달해 주며, 예언자들과 사도들의 말씀을 통해 성령의 소리가 울려 퍼지게 합니다”(제2차 바티칸 공의회, 하느님의 계시에 관한 교의 헌장 『하느님의 말씀』(Dei Verbum), 21항 참조). 이런 식으로 성령께서는 파스카 이후 “제자들의 마음을 여시어 성경을 깨닫게 해 주신”(루카 24,45 참조) 부활하신 예수님의 활동을 교회 안에서 계속 이어가십니다.
실제로 우리가 특별한 감흥 없이 여러 번 읽었던 성경의 특정 구절을 어느 날 믿음과 기도의 분위기 안에서 읽었을 때, 그 구절이 별안간 명료해지고, 우리에게 말을 건네고, 우리가 겪고 있는 문제를 밝히고, 특정 상황에서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뜻을 분명하게 드러내는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성령께서 밝혀주신 게 아니라면 이 변화는 어떻게 일어난 것일까요? 성경 말씀은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명료해집니다. 그럴 때 우리는 히브리서의 말씀이 얼마나 참인지 직접 느낄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며 어떤 쌍날칼보다도 날카롭습니다”(히브 4,12).
형제자매 여러분, 교회는 성경의 영적 독서, 곧 성경에 영감을 주신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성경을 읽을 때 양분을 얻습니다. 그 중심에는 모든 것을 비추는 등대처럼 구원의 계획을 완성하고 모든 상징과 예언을 실현하며 숨겨진 모든 신비를 드러내고 성경 전체를 읽는 참된 열쇠, 곧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사건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은 성경 전체를 밝히는 등대이자 우리 삶을 비추는 등대입니다. 요한 묵시록은 “안팎으로 글이 적힌 봉인된” 두루마리, 곧 구약성경의 봉인을 뜯는 어린 양의 이미지로 이 모든 것을 설명합니다(묵시 5,1-9 참조).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는 영감을 받아 기록된 성경 본문의 권위 있는 해석자이며, 교회는 믿을만한 말씀 선포의 중개자입니다. 교회는 성령을 받았기 때문에 – 이런 까닭에 권위 있는 해석자입니다 – “진리의 기둥이며 기초입니다”(1티모 3,15). 왜 그럴까요? 왜냐하면 교회는 성령의 영감을 받고 성령에 의해 굳건히 세워졌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임무는 신자들과 진리를 찾는 사람들이 성경 본문을 올바르게 해석하도록 돕는 것입니다.
하느님 말씀을 영적으로 읽는 한 가지 방법은 ‘렉시오 디비나’(lectio divina, 聖讀, 성독)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이 말을 듣고도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렉시오 디비나는 하루 중 일정 시간을 할애하여 성경 구절을 개인적으로 읽고 묵상하는 것입니다. 이는 매우 중요합니다. 매일 시간을 내어 성경 구절을 읽으면서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묵상하는 것입니다. 이런 까닭에 저는 항상 주머니나 가방에 작은 복음서를 들고 다니다가 여행할 때나 시간이 날 때마다 꺼내어 읽으라고 권고한 것입니다. (...) 이는 우리 인생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휴대용 복음서를 들고 다니다가 틈날 때마다 하루 한두 번 정도 읽으세요. 하지만 성경을 읽는 탁월한 영적 독서는 전례와 미사 중에 이루어지는 공동체 독서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구약성경에 나오는 사건이나 가르침이 어떻게 그리스도의 복음에서 온전히 성취되는지 볼 수 있습니다. 미사 강론도 중요합니다. 주례자가 하는 강론은 하느님 말씀이 책에서 삶으로 옮겨지는 데 도움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강론은 간결해야 합니다. 하느님 말씀을 삶으로 생생하게 보여주는 방법을 알려주고, 말씀에 대한 묵상을 나누고, 느낀 것을 전달하면 됩니다. 강론은 8분 이상 늘어져서는 안 됩니다. 시간이 늘어지면 사람들의 집중은 분산되고 꾸벅꾸벅 졸기 시작합니다. 신자들의 그러한 반응은 이유가 있습니다. 강론은 간결해야 합니다. 말을 많이 하고 길게 하는데 신자들이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게 강론하는 사제들에게 권고합니다. 짧게 강론하십시오. 생각, 느낌, 행동을 위한 조언, 해야 할 일에 대한 조언이 담겨야 합니다. 강론은 하느님 말씀을 책에서 삶으로 옮기는 데 도움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매일 미사나 성무일도를 통해 듣는 수많은 하느님 말씀 중에는 항상 우리에게 특별히 의미 있는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 마음에 와 닿는 말씀 말입니다. 그 말씀을 마음에 새기면 그 말씀은 우리의 하루를 밝게 비추고 우리의 기도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습니다. 말씀이 귀에 들어오지 않는 것이 문제이지만요!
하느님 말씀과 사랑에 빠지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생각으로 교리 교육을 마무리하겠습니다. 특정 노래 가사와 마찬가지로 성경에도 처음부터 끝까지 흐르는 배경음이 있습니다. 바로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이 말했습니다. “성경 전체는 오직 하느님의 사랑만을 말하고 있습니다”. 대 그레고리오 성인은 성경을 신랑이 신부에게 보내는 편지처럼 “전능하신 하느님께서 당신 피조물에게 보내시는 편지”라고 정의하며 “하느님 말씀 안에서 하느님의 마음을 배우라”고 권고합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이렇게 말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께서는 이 계시로써 당신의 넘치는 사랑으로 마치 친구를 대하시듯이 인간에게 말씀하시고, 인간과 사귀시며, 당신과 친교를 이루도록 인간을 부르시고 받아들이신다”(『하느님의 말씀』, 2항).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꾸준히 성경을 읽으세요! 잊지 말고 휴대용 복음서를 들고 다니세요. 가방이나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하루 중 어느 때라도 한 구절을 읽으세요. 그러면 하느님 말씀 안에 계시는 성령과 매우 가까워질 것입니다. 성경에 영감을 주셨고 이제는 성경 안에서 숨쉬시는 성령께서 우리로 하여금 삶의 구체적 상황에서 이 하느님 사랑을 깨달을 수 있게 도와주시길 빕니다. 고맙습니다.
번역 김호열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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