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와 네 여인을 통해 그리스도의 사명이 펼쳐졌습니다”
[2025년 희년 교리 교육] 우리의 희망이신 예수 그리스도
제1부 예수님의 어린 시절
1. 예수님의 족보(마태 1,1-17): 역사 안으로 오신 하느님의 아드님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부터 우리는 2025년 희년 전체를 아우르는 새로운 교리 교육 여정을 시작합니다. 주제는 “우리의 희망이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은 우리가 순례길에서 향하는 목표이시며, 동시에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 자체이시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교리 교육 여정의 첫 번째 부분에서는 복음사가 마태오와 루카가 우리에게 전하는 예수님의 어린 시절을 살펴보겠습니다(마태 1-2장; 루카 1-2장 참조). 예수님의 유년 시절을 들려주는 복음서는 예수님께서 동정녀 마리아의 태중에 잉태되시고 탄생하시기까지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그분 안에서 성취된 메시아에 관한 예언들을 언급하고, 하느님의 아드님을 다윗 왕조의 “줄기”에 접붙여주신 요셉의 법적 아버지됨을 이야기합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부모님께 순종하면서도 하느님 아버지와 그분의 나라에 온전히 헌신하는 예수님의 모습을 만나게 됩니다. 갓 태어난 아기에서부터 어린이 그리고 청소년에 이르기까지 예수님의 모습을 볼 수 있죠. 특히 흥미로운 점은 루카 복음사가가 마리아의 눈으로 사건들을 바라보는 반면, 마태오 복음사가는 전에 없던 특별한 아버지됨의 모습을 강조하며 요셉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풀어간다는 것입니다.
마태오 복음사가는 자신의 복음서이자 신약성경 전체의 문을 “다윗의 자손이시며 아브라함의 자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마태 1,1)라는 문장으로 엽니다. 이는 단순히 이름 나열이 아니라, 히브리어 성경에 이미 기록된 이름들을 통해 역사적 진실과 인간 삶의 참된 모습을 드러내고자 한 것입니다. 실제로 “주님의 족보는 역사적 진실을 있는 그대로 담고 있습니다. 그 안에는 언급하기조차 조심스러운 이름들이 있으며 다윗 임금의 죄마저 강조되어 있지만(마태 1,6 참조), 이 모든 것이 마리아와 그리스도 안에서 결실을 맺고 꽃피우게 됩니다(마태 1,16 참조)”(교황 서한 「교회사 연구 쇄신」, 2024년 11월 21일). 이렇게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인간 삶의 진실이 드러나는데, 여기에는 세 가지가 전해집니다. 고유한 정체성과 사명을 담고 있는 이름, 한 가정과 민족에 대한 소속감 그리고 이스라엘의 하느님께 대한 충실한 믿음입니다.
족보라는 문학양식은 매우 중요한 메시지를 담아내는 특별한 형태입니다. 그 메시지란 바로 어느 누구도 스스로 생명을 낳을 수 없다는 것, 모든 생명은 다른 누군가를 통해 선물로 전해진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족보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선택된 민족으로부터 대대로 이어져온 신앙의 유산이 자녀들에게 전해지는 과정을 보여주는데, 이는 마치 생명이 전해지듯 하느님께 대한 신앙도 세대를 거쳐 이어져 왔음을 말해줍니다.
구약성경의 족보들은 아버지가 자녀의 이름을 지어주는 이스라엘의 관습에 따라 남자들의 이름만 나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마태오가 전하는 예수님의 족보에는 특별히 여인들도 등장합니다. 다섯 명의 여인이 그 주인공입니다. 첫째는 과부가 된 뒤 남편의 후손을 잇고자 창녀로 행세한 유다의 며느리 타마르입니다(창세 38장 참조). 둘째는 히브리 정찰병들이 약속의 땅으로 숨어 들어가 정복할 수 있도록 도와준 예리코의 창녀 라합입니다(여호 2장 참조). 셋째는 시어머니를 한결 같은 마음으로 보살피며 훗날 다윗 임금의 증조모가 된 모압 여인 룻입니다(룻 1-4장 참조). 넷째는 밧 세바입니다. 다윗은 그녀와 간음을 저지르고 그녀의 남편을 전쟁터에서 죽게 한 뒤 솔로몬을 낳았습니다(2사무 11장 참조). 마지막으로 다윗 집안 요셉의 아내, 나자렛의 마리아입니다. 바로 그녀에게서 메시아이신 예수님께서 태어나셨습니다.
이 첫 네 여인을 하나로 묶는 공통점은 흔히 말하듯 그들이 죄인이라는 사실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이 이스라엘 백성이 아닌 ‘이방인’이었다는 점입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이 말씀하셨듯이, 마태오는 이들을 통해 중요한 의미를 드러냅니다. “이 여인들을 통해 이방 민족들의 세계가 예수님의 족보 안으로 들어오며, 이로써 유다인과 이방인을 아우르는 그분의 사명이 분명히 드러납니다”(베네딕토 16세 교황, 『나자렛 예수: 유년기』, 밀라노-바티칸 시국, 2012년, 15쪽).
앞선 네 여인이 자신들이 낳은 아들이나 자신들을 통해 자녀를 얻은 남자와 함께 언급된 것과 달리, 마리아는 특별한 의미를 지닙니다. 마리아는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표징입니다. 마리아를 통해 새로운 시작이 이루어집니다. 마리아의 이야기에서는 더 이상 피조물인 인간이 출산의 주체가 아니라 하느님 자신이 그 주체가 되십니다. 이는 족보에 사용된 동사의 미묘한 차이에서 특별히 드러납니다.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는데,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고 불리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다”(마태 1,16). 족보 전체에서 ‘누가 누구의 아버지가 되었다(낳았다)’라는 표현이 반복되다가, 마지막에 “태어나셨다”라는 형태로 바뀌어 하느님의 능동적 개입을 드러냅니다. 예수님께서는 요셉을 통해 다윗 왕조에 접붙여지신 다윗의 자손이시며 이스라엘의 메시아로서, 또한 아브라함의 자손이시며 이방 여인들의 후손으로서 “민족들의 빛”(루카 2,32 참조)이시요 “세상의 구원자”(요한 4,42)이십니다.
하느님 아버지께 봉헌되시어 그분의 얼굴을 드러내시는 사명을 지니신 하느님의 아드님(요한 1,18; 14,9 참조)께서는 모든 인간 자녀들처럼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래서 나자렛에서는 “요셉의 아들”(요한 6,42) 또는 “목수의 아들”(마태 13,55)로 불리셨습니다. 참 하느님이시며 참 인간이죠.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 선조들을 향한 감사의 마음을 되살리도록 합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어머니 교회를 통하여 우리를 영원한 생명, 곧 우리의 희망이신 예수님의 생명으로 이끌어주신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시다.
번역 김호열 신부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용시에는 출처를 밝혀주시고, 임의 편집/변형하지 마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