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은 ‘기쁜 소식’입니다. 찡그린 얼굴로는 전할 수 없습니다”
교리 교육: 성령과 신부. 하느님 백성을 우리의 희망이신 예수님께로 인도하시는 성령
15. 성령의 열매: 기쁨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세요!
지난주 교리 교육에서 우리는 성령께서 교회 안에서 이루시는 성화(聖化) 활동 방식인 ‘은사’(charisma, 카리스마)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성령의 활동과 연관된 세 번째 현실인 “성령의 열매”에 대해 깊이 묵상하고자 합니다. 성령의 열매란 무엇일까요? 바오로 사도는 갈라티아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에서 성령의 열매를 다음과 같이 명확하게 제시합니다. “성령의 열매는 사랑, 기쁨, 평화, 인내, 호의, 선의, 성실, 온유, 절제입니다”(갈라 5,22). 이렇게 아홉 가지 성령의 열매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성령의 열매”가 우리 신앙생활에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성령께서 교회의 유익을 위해 당신이 원하시는 이에게 원하시는 때에 주시는 은사와는 달리 성령의 ‘열매’, 다시 한번 하나하나 마음에 새기며 말씀드리면 사랑, 기쁨, 평화, 인내, 호의, 선의, 성실, 온유, 절제는 하느님의 은총과 우리의 자유의지가 조화롭게 협력한 결실입니다. 이러한 성령의 열매는 “사랑으로 행동하는 믿음”(갈라 5,6)을 살아내는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 안에서 때로는 우리를 놀라게 하고 기쁨이 넘치게 하는 방식으로 그 창조적 권능을 드러내게 됩니다. 교회 안에서 모든 이가 사도나 예언자, 복음 선포자가 될 수는 없지만, 모두 예외 없이 너그러운 사람, 인내심 있는 사람, 겸손한 사람, 평화의 일꾼이 될 수 있고 또 그래야만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는 너그럽고 인내하며, 겸손한 마음으로, 전쟁이 아닌 평화의 일꾼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가 열거한 성령의 열매 가운데, 저는 교황 권고 「복음의 기쁨」(Evangelii gaudium)의 서두 문단을 떠올리며 한 가지를 특별히 강조하고 싶습니다. “복음의 기쁨은 예수님을 만나는 모든 이의 마음과 삶을 가득 채워 줍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구원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죄와 슬픔, 내적 공허와 외로움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기쁨이 끊임없이 새로 생겨납니다”(「복음의 기쁨」, 1항). 우리 삶에 때로는 슬픈 순간들이 찾아올 수 있지만, 그 속에서도 평화는 늘 함께합니다. 예수님께서 계시면 기쁨과 평화가 깃들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열매인 기쁨은 우리가 느끼는 다른 모든 기쁨과 마찬가지로 우리를 충만하고 만족스럽게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이 기쁨이 영원히 지속되기를 바라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는 경험을 통해 알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빠르게 지나가기에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말이죠. 참으로 모든 것이 빠르게 지나갑니다. 함께 생각해 봅시다. 청춘도 순식간에 지나가고, 건강도, 힘도, 편안함도, 우정도, 사랑도 그러합니다. 백 년쯤 이어질까요? 그조차도 어림없는 일이지요. 게다가 설령 이러한 것들이 빨리 사라지지 않는다 해도,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것들은 더 이상 우리를 충족시키지 못하거나 오히려 싫증나게 됩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이 하느님께 고백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주여, 님 위해 우리를 내시었기 님 안에 쉬기까지는 우리 마음이 찹찹하지 않삽나이다.” 이처럼 우리 마음은 아름다움과 평화, 사랑과 기쁨을 찾아 끊임없이 안달하며 돌아다닙니다.
복음의 기쁨, 곧 복음이 주는 기쁨은 다른 어떤 기쁨과도 달리 날마다 새로워질 수 있으며 다른 이들에게 전달되는 특징이 있습니다. “풍요로운 우정으로 꽃피우는 하느님 사랑과 만남으로써, 또는 그 사랑과 새롭게 만남으로써 비로소 우리는 자신의 고립감과 자아도취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 바로 여기에 복음화 활동의 원천이 있습니다. 따라서, 삶의 의미를 되찾아 주는 사랑을 받았는데, 어떻게 이 사랑을 다른 이들과 나누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복음의 기쁨」, 8항) 이것이 바로 성령의 열매인 기쁨이 지닌 두 가지 특징입니다. 이 기쁨은 세월이 흘러도 빛이 바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과 나눌수록 더욱 풍성해집니다! 참된 기쁨은 다른 이들과 나누게 되고, 저절로 “물들어” 갑니다.
오백 년 전, 이곳 로마에는 필립보 네리라는 성인이 살았습니다. 그분은 ‘기쁨의 성인’으로 역사에 남아있습니다. 그분은 자신이 설립한 오라토리오에서 지내는 가난하고 버림받은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얘들아, 늘 기뻐하렴. 나는 너희가 쓸데없는 걱정과 슬픔에 빠지는 것을 바라지 않는단다. 너희가 죄짓지 않는 것으로 충분하단다.” 그리고 또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할 수 있다면 착하게 살아라!” 하지만 그분의 기쁨이 어디에서 왔는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성 필립보 네리 신부님은 하느님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때로는 가슴속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고 합니다. 그분의 기쁨은 가장 완전한 의미에서 성령의 열매였습니다. 성인은 1575년 희년에 참여했고, 일곱 성당 순례의 전통을 세워 희년의 의미를 더욱 풍성하게 했습니다. 그분은 당대에 기쁨을 통해 복음을 참되게 전하신 분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분에게서는 예수님의 모습 그대로가 보였습니다. 언제나, 모든 것을 용서하셨던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 가운데 누군가는 이런 생각을 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나는 이런 죄를 지었는데, (...) 이것만큼은 용서받을 수 없을 거야.” 제가 하는 말을 깊이 새겨들으세요. 하느님께서는 모든 것을 용서하시고, 언제나 용서하십니다. 바로 여기에 기쁨이 있습니다. 하느님께 용서받는다는 것, 바로 그 지점입니다. 그래서 저는 사제들과 고해사제들에게 늘 이렇게 당부합니다. 모든 것을 용서하라고요. 너무 캐묻지 마시고 그냥 용서하라고요. 모든 것을, 정말 모든 것을 용서하는 것, 그것이 제가 전하는 당부의 모든 것입니다.
“복음”이라는 말은 기쁜 소식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심통 난 얼굴과 침울한 표정으로 복음을 전할 수 없으며, 감춰진 보물과 귀중한 진주를 발견한 사람의 그 벅찬 기쁨으로 전해야 합니다. 바오로 사도가 필리피 교회의 신자들에게 남긴 권고의 말씀을 기억합시다. 이 말씀은 지금 우리에게도 울려 퍼집니다. “주님 안에서 늘 기뻐하십시오. 거듭 말합니다. 기뻐하십시오. 여러분의 너그러운 마음을 모든 사람이 알 수 있게 하십시오”(필리 4,4-5).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예수님을 만난 기쁨이 여러분의 마음 안에 넘쳐나길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번역 김호열 신부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용시에는 출처를 밝혀주시고, 임의 편집/변형하지 마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