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각자의 은사로 교회를 살찌웁니다”
교리 교육: 성령과 신부. 하느님 백성을 우리의 희망이신 예수님께로 인도하시는 성령
14. “신부의 선물” 공동선을 위한 성령의 선물인 은사(카리스마)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세요!
지난 세 차례의 교리 교육에서 우리는 성사 거행과 기도 생활, 하느님의 어머니를 본받는 삶을 통해 이루어지는 성령의 성화(聖化) 활동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중요한 가르침을 살펴보겠습니다. “성령께서는 성사와 직무를 통하여 하느님의 백성을 거룩하게 하시고 인도하시며 여러 가지 덕행으로 꾸며 주실 뿐 아니라 또한 당신 은사를 ‘당신이 원하시는 대로 각자에게 나누어 주시며’(1코린 12,11) 모든 계층의 신자들에게 특별한 은사도 나누어 주신다”(교회에 관한 교의 헌장 『인류의 빛』(Lumen gentium), 12). 우리도 저마다 성령께서 개별적으로 주시는 이러한 선물들을 받았습니다.
이제, 성령의 또 다른 성화 활동 방식인 ‘은사적 활동’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은사’(charisma, 카리스마)라는 단어가 다소 어려울 수 있으니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은사를 정의하는 데는 두 가지 핵심 요소가 있습니다. 첫째, 은사는 “공동선을 위하여”(1코린 12, 7) 주어진 선물로, 모든 이의 유익을 위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은사는 본래 개인의 성화보다는 공동체 봉사를 위해 주어진 것입니다(1베드 4,10 참조). 이것이 첫 번째 측면입니다. 둘째, 은사는 “한 사람” 또는 “특정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특별한 선물입니다. 모든 이에게 똑같은 방식으로 주어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성화의 은총이나 향주덕, 성사와는 그 성격이 다릅니다. 성화의 은총과 향주덕, 성사는 모든 신자가 똑같이 받는 은총이지만, 은사는 특정 개인이나 공동체에 주어지는 하느님의 고유한 선물입니다. 은사는 하느님께서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주시는 특별한 은총입니다.
이에 대해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각 사람에게 주신 성령의 선물은 공동의 유익을 위한 것이라는(1코린 12,7 참조) 말씀에 따라, 성령께서는 그러한 은총으로 교회의 쇄신과 더욱 폭넓은 교회 건설을 위하여 유익한 여러 가지 활동이나 직무를 받아들이는 데에 알맞도록 신자들을 준비시킨다”(『인류의 빛』, 12).
은사는 성령께서 그리스도의 신부를 아름답게 꾸미시려고 나누어주시는 “보석”, 곧 장신구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는 공의회 문헌이 다음과 같은 권고로 마무리되는 이유를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은사는 뛰어난 것이든 더 단순하고 더 널리 퍼진 것이든 교회의 필요에 매우 적합하고 유익한 것이므로 감사와 위안으로 받아들여야 한다”(『인류의 빛』, 12).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공의회 이후 시대의 역사를 살펴보면, 참된 쇄신의 역동성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는 생명력 넘치는 교회 내 운동들 안에서 종종 예기치 않은 형태로 나타났고, 거룩한 교회의 무궁무진한 생명력을 생생히 느낄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한 개인을 통해 공동체에 주어진 은사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성령의 은사를 재발견해야 합니다. 이를 통해 평신도, 특히 여성의 역할 증진을 단순히 제도적, 사회학적 현상에 그치지 않고 성경적, 영성적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평신도는 결코 말단이 아닙니다. 평신도는 성직자의 외부 협력자도 아니고, 성직자의 “보조 인력”도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평신도는 교회의 사명 수행에 이바지하는 자신들만의 고유한 은사와 선물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은사를 떠올리면 대개들 특별하고 남다른 능력을 생각합니다. 하지만 은사는 우리 일상에 스며있는 소중한 선물입니다. 우리 각자에게 맡겨진 고유한 선물이죠. 이 선물은 성령의 이끄심으로 우리 삶 속에서 사랑으로 피어날 때 비로소 특별한 빛을 발합니다. 이러한 은사의 본질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은사 이야기를 들을 때면 많은 신자들은 마음 한켠이 무거워집니다. 자신은 받은 것이 없다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초라하게 여기고 슬퍼하거나 실망하는데, 마치 ‘열등한 신자’가 된 것처럼 생각하죠.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열등한 신자는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주님께서 선택하신 소중한 사람들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또 공동체의 지체로서 저마다 귀한 은사를 받았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은 자기 자신을 초라하게 생각하는 이들에게 아름다운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이 사랑한다면, 여러분이 받은 선물은 결코 작지 않습니다. 일치를 사랑한다면, 공동체 안에서 피어나는 모든 은사가 바로 여러분의 것입니다! 우리 몸에서 보는 것은 눈뿐이지만, 눈이 자신만을 위해 보겠습니까? 아닙니다. 눈은 손을 위해, 발을 위해 , 모든 지체를 위해 보는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가 사랑을 “더욱 뛰어난 길”(1코린 12,31)이라 말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사랑은 나로 하여금 교회나 공동체를 사랑하게 하고, 일치 안에서 일부가 아닌 모든 은사를 “나의 것”으로 만듭니다. 마찬가지로 “나의” 은사는, 비록 작아 보일지라도 모든 이의 것이며 모든 이의 유익을 위한 것입니다. 사랑은 은사를 더욱 풍요롭게 합니다. 한 사람의 은사가 모든 이의 은사가 되는 것입니다. 고맙습니다.
번역 김호열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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