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파푸아뉴기니 젊은이들에게 “분열이 아닌 조화를 선택하고, 넘어진 이를 일으켜 세우십시오”
Alessandro Di Bussolo
미소와 다정한 몸짓, 환호가 어우러지는 대화가 돋보인 교감의 시간. 프란치스코 교황과 함께 기쁨의 시간을 보낸 1만여 명의 파푸아뉴기니 청년들이 포트모르즈비의 ‘존 기즈 경’ 경기장에서 나눈 만남의 핵심이 바로 이것이었다. 교황은 전날 이 경기장에서 미사를 봉헌하기도 했다. 연로한 교황이 청년들을 향해 엄지를 치켜세우며 미소를 보내자 “젊은이들이 많이 사는 젊은 나라”의 “미래의 희망”인 청년들은 그 시선에 반응하며 반짝이는 눈빛으로 화답했다.
진심, 사랑, 섬김의 언어
교황은 준비한 원고를 읽는 대신 미소를 지으며 청년들에게 “분열의 모델과 화합의 모델” 중 무엇을 선택할 것인지 물었다. 이에 청년들은 한목소리로 “조화”를 외쳤다. 교황은 “주님께서는 우리가 다른 이들과 좋은 관계를 맺도록 창조하셨다”고 강조했다. 800개 이상의 언어가 존재하는 이 나라에서 교황이 청년들에게 “우리를 하나로 묶어줄 단 하나의 언어가 필요한데 그게 무엇일까?” 하고 묻자 한 청년이 “사랑”이라고 대답했다. 교황은 “여러분의 공통 언어는 진심의 언어, 사랑의 언어, 친밀함의 언어, 섬김의 언어”라며 “여러분 모두가 이 언어로 말하며 사랑의 ‘완톡’(Wantok)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편집주: 완톡이란 파푸아뉴기니에서 같은 언어를 사용하며 같은 민족 집단에 속한 사람을 뜻한다. 말이 통하면 같은 형제라는 뜻을 내포한다). 교황은 무관심의 악에 맞서기 위해 “이웃을 돌보고자 하는 부단한 마음을 지녀야 한다”고 강조하며 “청년의 삶에서 매우 중요한 관계는 조부모와의 관계”라고 설명했다.
“넘어진 누군가를 만나면 일으켜 세우십시오”
교황은 연설을 마치며 자신이 매우 좋아하는 주제를 꺼냈다. “우리는 모두 실수할 수 있습니다. 모두가 그렇죠. (...)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실수를 깨닫고, 바로잡는 것입니다.” 교황은 산을 오를 때 젊은이들이 부르는 노래 가사를 인용하며 설명을 이어갔다. “등산 기술에서 중요한 것은 넘어지지 않는 게 아니라, 넘어진 채로 있지 않는 것입니다.” 교황은 청년들에게 물었다. “만약 친구나 동료가 넘어졌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넘어진 걸 보면서 비웃어야 할까요?” 청년들은 한목소리로 “아니오!”라고 외쳤다. 교황은 “여러분은 그 친구를 살피고, 다시 일어서도록 도와줘야 한다”며 “우리가 인생에서 다른 사람을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볼 수 있는 유일한 순간은 그를 일으켜 세울 때뿐”이라고 강조했다. 교황은 공식 만남 이후 노래가 끝날 때에도 이 질문을 다시금 두 번 반복했다. “길에서 여러 문제로 지쳐 쓰러진 누군가를 발견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한 대 쥐어 박아야 할까요?“ 경기장 안에서 울려 퍼진 “아니오!”라는 대답에 교황은 다음과 같이 되물었다. “넘어진 사람을 만나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젊은이들은 다시 한번 “일으켜 세워줘요!”라고 크게 소리쳤고, 교황은 그 순간 손을 내밀어 넘어진 사람을 일으켜 세우는 몸짓을 취했다.
바벨탑 이야기
교황은 이날 연설에 앞서 멋진 공연을 보여준 퍼포먼스 팀에게 감사를 전했다. 교황은 “바다와 하늘이 만나는 곳, 꿈이 태어나고 도전이 멈추지 않는 나라인 파푸아뉴기니의 아름다움”을 보여준 공연에 감사하며 “희망의 미소로 미래를 맞이하자”고 당부했다. 아울러 “미래의 희망”인 남녀 청년들에게 “우리는 어떻게 미래를 만들어 나가야 하는지”, “우리 삶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싶은지” 함께 성찰해 보자고 초대했다. 그 초대는 성경 속 바벨탑 이야기로 이어졌고, 교황은 바벨탑 이야기에서 서로 상반된 두 가지 삶의 방식과 그에 따른 사회 건설 방식이 맞선다고 설명했다. “하나는 혼란과 분열로 이끌고, 다른 하나는 하느님과 형제들 간의 만남을 통한 조화로 이끕니다.” 이후 교황은 일방적 연설이 아니라 청년들과 묻고 답하며 대화 형식으로 연설을 이어갔다.
존 보스코 오람 주교, 파푸아뉴기니 젊은이를 위한 도전 제기
화려한 색상과 깃털로 장식된 전통 의상을 입은 20여 명의 청년들이 환영 춤을 선보인 뒤 킴베교구장 존 보스코 오람 주교가 교황에게 인사말을 전했다. 청년 담당 주교인 오람 주교는 파푸아뉴기니 청년들이 직면한 가장 큰 도전과 관련해 “그들이 처한 현실 속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청년들이 “가정과 사회 안에서 그리스도교 가치를 실천하는 것, 성장과 발전의 기회 부족 그리고 사회, 정부, 심지어 교회조차도 기대를 저버려 여러 가지 실망감을 느끼는 것”과 같은 심각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고 설명했다.
“희망의 섬” 공연
이날 만남의 하이라이트는 파푸아뉴기니와 솔로몬 제도 출신 청년 네 명이 주인공으로 나선 “희망의 섬” 공연이었다. 이들은 “희망의 미소”로 미래를 만들어 가기 위해 각자의 역할에 헌신했다. 한 사람은 가정, 다른 한 사람은 환경보호, 또 다른 한 사람은 지역 문화 가치 증진을 통해, 마지막 한 사람은 교육 지원 분야를 통해 미래를 일구려고 노력했다. 끝으로 내레이터는 “청년들은 단순히 미래의 지도자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변화를 이끄는 주역들”이라며 “그들의 여정을 함께 응원하자”고 말했다. “청년들이 우리 사회에 기여한 바를 함께 인정하고 격려합시다.”
패트리샤: 젊은 가톨릭 전문인들의 헌신
공연을 마친 뒤 첫 번째 신앙 나눔에 나선 사람은 ‘가톨릭전문인협회’ 소속의 패트리샤 해리큰-코르폭이었다. 그녀는 스포츠, 오락 산업, 소셜미디어와 과학기술의 영향 아래에서 다양한 가치관과 종교적 신념들이 경쟁하는 현실 가운데 가톨릭 신앙과 도덕을 지키며 살아가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이야기했다. 패트리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푸아뉴기니의 젊은 가톨릭 전문인들이 “공동선과 국민의 안녕, 특히 목소리를 내지 못하거나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헌신하고 있다”고 전했다. 아울러 “그리스도교 신앙의 관점에서 사회, 정치, 경제, 환경, 인권 문제에 목소리를 내는 것이 언제나 쉬운 일은 아니지만, 오늘날 젊은 가톨릭 전문인들은 여전히 공동선을 위해 싸우고 있으며, 특히 소외된 이들이나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헌신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라이언의 증언: 분열된 가정으로 고통받는 청년들
패트리샤에 이어 라이언 불룸은 분열된 가정에서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냈다며, 교회가 “나의 피난처가 됐다”고 고백했다. 분열된 가정이나 청년들에게 지나친 기대를 부여하는 가정은 라이언이 말한 것처럼 “대다수 청년들이 겪는 어려움”이다. 그는 많은 청년들이 “부모가 함께 있지 않거나 별거 중이라 소통의 어려움을 겪는다”면서, 그로 인해 “많은 이들이 유해한 물질에 손을 대거나 불법 활동에 가담하고, 삶의 희망을 잃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라이언은 파푸아뉴기니의 가톨릭 부부들이 혼인성사를 받고 이를 지키며 “끈끈한 가정을 이루어 젊은이들이 안전하다고 느끼고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한 그는 교회가 청년들을 따뜻하게 맞이하고, 그들이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나누며 교회의 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독려해 더 나은 교회를 함께 만들어 나가자고 촉구했다.
베르나데트: 가정 내 학대 근절을 위한 외침
마지막으로 발언한 베르나데트 투르모니는 대가족의 막내이자 넷째 딸이다. 레지오 마리애 활동을 하고 있는 그녀는 가정 내 학대가 젊은이의 삶을 파괴하는 비극이라고 소리 높여 말했다. “가정 내 학대의 피해자는 사랑받지 못하고 존중받지 못한다고 느낍니다. 희망을 잃고 목숨을 끊거나 가족을 떠날 수도 있습니다.” 베르나데트는 파푸아뉴기니의 광물자원이 풍부함에도 빈곤이 갈수록 증가하는 현실을 지적했다. 그녀는 이러한 빈곤을 두고 “많은 젊은이들이 학업을 마치지 못하거나 꿈과 희망을 포기하는 이유 중 하나”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로 인해 “돈을 벌기 위해 마약을 판매하거나 절도, 구걸에 의존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베르나데트는 교황에게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하고 물었고, 교황 권고 「그리스도는 살아 계십니다」(Christus vivit)에서 그 답을 찾았다고 말했다. “하느님께서는 언제나 살아 계십니다. 그러니 우리도 언제나 살아 있어야 합니다.” 베르나데트는 “청년으로서 내가 겪어온 온갖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내 삶을 살아갈 수 있다”며 “비록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지만, 하느님은 나의 모든 것”이라고 말했다.
번역 이재협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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