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주요 20개국(G20) 브라질 정상회의 2024년 주요 20개국(G20) 브라질 정상회의  (AFP or licensors)

교황, G20 정상회의 메시지 “고리대금과 탐욕으로 기아와 죽음을 초래하는 사람은 살인자”

교황청 국무원 총리 피에트로 파롤린 추기경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의 메시지를 대독하며 “기아는 범죄”라고 단언했다. 메시지에서 교황은 이념 논쟁에 빠져 있는 동안 수백만 명이 굶주리고 있는 현실을 질타했다. 아울러 무기 구매에 돈을 쏟아붓는 대신, 그 자금을 기아 퇴치와 빈곤국 발전을 위한 세계 기금으로 전환할 것을 제안했다. 특히 교황은 전쟁으로 인한 경제적 부담과 식량 부족 사태 악화 문제를 지적하며, G20 정상들에게 분쟁 지역의 “항구적인 평화”를 이루기 위한 “새로운 길”을 모색해 달라고 호소했다.

Salvatore Cernuzio 

살인이다. 비록 간접적이지만, “고리대금과 탐욕으로 인류 가족인 형제자매들을 굶주림과 죽음으로 내모는 이들”이 저지르는 행실은 분명한 살인이다.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개막한 주요 20개국(이하 G20) 정상회의(2024년 11월 18-19일)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세계 정상들을 향해 이 같이 강력한 메시지를 보냈다. 교황의 대리인 자격으로 이번 정상회의에 참석한 교황청 국무원 총리 피에트로 파롤린 추기경은 11월 18일 교황 메시지를 대독하며, 기아와 빈곤 퇴치를 위한 “즉각적이고 단호한” 조치를 촉구했다. 교황은 이 “재앙”을 하루빨리 뿌리 뽑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더 나은 세상을 향하여

교황은 이번 메시지를 통해 오늘날 세계를 뒤덮은 온갖 병폐를 짚어나갔다. 예컨대 금융 투기, 불균형한 식량 체계, 수많은 사망자와 난민을 낳고 환경을 파괴하는 전쟁 등이다. 특히 교황은 전쟁으로 인해 식량 부족 사태가 심화되고 있다며, “막대한” 군비 지출이 세계 경제에 감당하기 어려운 부담을 주고 있다고 강조했다. 교황은 적극적인 행동을 촉구했다. 

“이번 정상회의의 논의와 결실이 더 나은 세상과 다음 세대의 번영을 위해 이바지하길 간절히 희망합니다.”

식량 낭비의 부끄러운 민낯 

교황은 정치권을 향해 강력한 메시지를 던졌다. 교황은 회칙 「Fratelli tutti」 189항을 인용하며 세계 정치가 “효과적인 기아 근절을 자신의 근본적이고 으뜸가는 목표들 가운데에 하나”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금융 투기가 식량을 하나의 상품으로 취급하며 식량 가격을 좌우할 때, 수백만 명이 굶주림으로 고통받고 죽어 갑니다. 한편 상당량의 음식이 버려지고 있습니다. 이는 참으로 부끄러운 일입니다.”

“기아는 범죄입니다. 음식은 결코 양도할 수 없는 권리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용어와 이념을 두고 논쟁하느라, 바로 곁에서 우리의 형제자매들이 굶주림과 목마름으로 죽어 가도록 내버려 두고는 합니다.”

G20 브라질 정상회의에서 교황 메시지를 대독하는 파롤린 추기경
G20 브라질 정상회의에서 교황 메시지를 대독하는 파롤린 추기경

안정적이고 항구적인 평화

교황은 세계화된 시대의 상호 연결된 도전들 속에서, 국제 체제가 직면한 여러 압박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압박은 전쟁과 분쟁이 날로 심화되는 현실, 테러리즘의 위협, 각국의 강압적인 외교 정책과 침략 행위들, 여전히 해소되지 않은 불의의 지속 등 여러 양상으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교황은 G20 정상회의가 “모든 분쟁 지역에서 안정적이고 항구적인 평화를 이룩할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한다”고 호소하며 “이를 통해 피해를 입은 이들의 존엄성을 회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쟁의 그림자, 세계 경제를 짓누르다

파롤린 추기경이 대독한 메시지에서 교황은 세계 곳곳의 전쟁이 미치는 참혹한 영향을 날카롭게 지적했다. “오늘날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무력 분쟁들은 무고한 생명들의 희생과 대규모 실향민의 발생, 환경 파괴를 초래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이러한 분쟁의 여파는 직접적으로는 해당 지역에서, 간접적으로는 공급망의 붕괴를 통해 분쟁 지역으로부터 수백,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국가들에까지 미쳐 식량 부족 사태와 빈곤을 심화시키고 있습니다.”

“특히 전쟁 수행을 위해 무기와 군비에 투입되는 천문학적 규모의 비용은 각국 경제에 감당하기 어려운 부담을 지속적으로 안기고 있습니다.”

영양실조와 비만의 딜레마, 인류의 모순된 자화상

교황은 현대 사회가 직면한 충격적인 모순을 지적했다. 한편에서는 30억 명이 넘는 사람들이 “적정 영양 섭취조차 하지 못하는”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약 20억 명이 “잘못된 식습관과 운동 부족으로 과체중이나 비만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이다. 교황은 “모든 차원의 변화를 위한 협력적 노력”과 함께 “식량 체계 전반의 근본적인 재편”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식량 부족 앞에서 침묵하는 사회를 향한 경고

교황은 “인류를 빈곤과 기아로부터 구해내기 위한” 노력을 거듭 촉구했다. 아울러 오늘날까지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에 “우려”를 표명하며 “인류 사회가 식량 부족 앞에서 침묵하며 방관하는 것은 추악한 불의이자 중대한 범죄”라고 지적했다. 

“고리대금과 탐욕으로 인류 가족인 형제자매들을 굶주림과 죽음으로 내모는 이들은 간접적이나마 살인을 저지르는 것이며,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기아와 빈곤, 끊을 수 없는 악순환의 고리 

교황은 특히 기아 문제의 본질을 꿰뚫으며 다음과 같이 날카롭게 지적했다. “기아는 단순히 식량 부족의 문제가 아닙니다. 더 광범위한 사회경제적 불의의 산물입니다.” 이어 빈곤 문제에 주목한 교황은 “특히 빈곤은 기아를 낳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라며 “빈곤은 인류 사회에 깊이 뿌리내린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끊임없이 재생산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아와 빈곤이라는 이 두 가지 사회악은 우리 시대의 가장 아픈 현실을 이루고 있습니다.”

국제사회의 구체적 실천 의지

교황은 이 “재앙”을 뿌리 뽑기 위해서는 “공동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이를 위해 각국 정부와 국제기구, 사회 전체가 “구체적인 실천 의지”를 보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하느님께서 주신 인간 존엄성의 가치를 최우선으로 삼고, 모든 이의 기본적 생존권을 보장하며, 자원의 공정한 분배를 실현하는 일이 모든 정치적, 사회적 의제의 첫 자리를 차지해야 합니다.”

단기 처방이 아닌 근본적 해결책을 찾아서

교황은 자원의 공정한 분배를 핵심 과제로 지목했다. “실제로 우리 지구상의 모든 사람을 먹여 살릴 만큼 충분한 식량이 이미 마련돼 있습니다. 단지 불공정하게 분배돼 있을 뿐입니다.” 교황은 특히 매일 발생하는 음식 낭비 문제에 주목하면서,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공동 행동”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를 통해 자원을 가난하고 굶주린 이들의 일차적 필요를 채우는 투자로 전환할 수 있습니다.” 교황은 “통합적이고 전 지구적이며 다자간 접근”이 중요하다며 “사안의 규모와 지리적 파급력을 고려할 때” 이는 필연적인 선택이라고 설명했다. 

“단기적 해결책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영양실조에 효과적으로 대처하려면 장기적인 안목과 전략이 필요합니다.”

기아 퇴치와 빈곤국 발전을 위한 세계 기금

교황은 기아와 빈곤 퇴치를 위한 글로벌 동맹이 이러한 재앙과 맞서는 세계적 노력에 “의미 있는 전환점”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특별히 교황청이 제안한 바와 같이 “현재 무기와 기타 군비로 쓰이는 자금을 기아 퇴치와 가장 가난한 나라들의 발전을 위한 세계 기금으로 전환하자”는 구상이 실현되길 촉구했다. “이러한 접근 방식은 해당 국가의 시민들이 절박한 현실 앞에서 폭력이나 거짓된 해결책의 유혹에 빠지지 않고, 인간다운 삶을 찾아 어쩔 수 없이 고국을 등져야 하는 아픔을 겪지 않도록 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념적 식민화는 안 됩니다

교황은 “협소하고 근시안적인 진보라는 이름으로” 민족들의 문화적, 전통적 풍요로움을 무시하거나 파괴해서는 안 된다면서, 그렇게 하면 결국 “이념적 식민화”와 다르지 않다고 덧붙였다. 교황은 개입을 하거나 사업을 추진하는 데 있어서 “사익과 이윤 창출만 중시하는 세력들이 위에서 아래로 명령을 내리는 방식으로 진행하면 안 된다”며 “반드시 현지인들과 그들 공동체의 필요를 담아 계획하고 실천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황청의 기여

교황은 “교황청은 앞으로도 인간 존엄성을 증진하고 공동선에 이바지하는 고유한 사명을 계속해 나갈 것”이라고 약속했다. 이를 위해 “전 세계 가톨릭 기관들의 경험과 헌신을 아낌없이 내어놓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리하여 우리 세상 어디에도 하느님의 자녀로서 존엄성을 지닌 이들이 일용할 양식을 잃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번역 이창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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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11월 2024, 11: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