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아이들의 미소를 앗아간 전쟁… 예수님이 평화의 희망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12월 15일 오스테를리츠 광장에서 코르시카 사도 순방 폐막미사를 거행했다. 교황은 강론에서 나눔이 없는 사회는 진정한 기쁨을 누리지 못하고 소비주의의 희생양이 된다고 말했다. 또한 분쟁으로 상처 입은 세상을 향해 예수님의 탄생 소식이 평화의 표징이 된다고 말했다.

Benedetta Capelli 

하얀 깃발들이 공중에서 나부꼈다. 신자들은 아이들을 품에 안고 프란치스코 교황의 축복을 받으러 나왔다. 연한 초록빛 담요에 감싼 갓난아기도 있었다. 이날을 기념하는 묵주들이 어린이들의 손에서 반짝였다. 교황 차량이 지나가는 길목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을 외치는 환호성이 울려 퍼졌고, 그 사이로 코르시카 전통 성가가 하늘로 올라갔다. 차량은 오스테를리츠 광장을 향해 나아갔다. 이곳은 ‘카소네 광장’ 혹은 ‘나폴레옹의 동굴’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어린 나폴레옹이 이곳에서 원대한 꿈을 키웠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1만5000여 명의 신자들이 모인 광장에는 하얀색과 하늘색이 어우러진 임시 제단이 세워졌고, 그 위에 닻 모양의 큰 십자가가 신자들을 내려다보았다. 제단 상단에는 “평화”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고 시의적절한 말이었다.

교황은 이탈리아어로 전한 강론에서 우리가 희망하는 평화는 예수님을 통해서만 이룰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오시는 예수님께서 늘 우리와 함께 계시기에 이 희망은 결코 헛되지 않으며, 이 굳건한 믿음에서 정의와 평화를 향한 무한한 힘이 솟아난다고 설명했다. 특히 교황의 마음에는 전쟁으로 고통받는 이들을 향한 깊은 연민이 담겨 있었다. 그것은 아이들의 얼굴에 새겨진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바라보는 아버지의 아픔과 같았다.

“형제자매 여러분, 안타깝게도 우리는 지금 크나큰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빈곤과 전쟁, 부패와 폭력이 우리를 괴롭히고 있죠. 여러분께 이야기 하나를 들려드리겠습니다. 일반알현 때 우크라이나 아이들이 저를 찾아오곤 합니다. 전쟁을 피해 이곳으로 온 아이들이죠. 여러분께 마음 아픈 말씀을 드리자면, 이 아이들은 더 이상 미소를 짓지 않습니다! 웃음을 잃어버렸습니다. 부디 전쟁터에 남겨진 이 아이들을, 그들의 고통을, 수많은 어린이들의 아픔을 여러분의 마음에 담아주시기 바랍니다.”

아이들이 넘치는 은총의 땅

교황은 우크라이나 아이들의 고통을 언급하기 직전, 코르시카에 그토록 많은 어린이들을 볼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움과 기쁨을 표했다. 아울러 “자녀들은 여러분의 기쁨이 되고, 미래에 여러분의 위로가 될 것”이라며 자녀를 많이 낳으라고 권고했다.

“정말 대단합니다! 저는 이렇게 많은 아이들을 본 적이 없습니다! 참으로 하느님의 은총입니다. 반면에 강아지는 단 두 마리밖에 보지 못했습니다. 이토록 많은 아이들을 본 적이 없습니다. 오직 동티모르에서만 이토록 많은 아이들을 보았을 뿐, 다른 어느 도시에서도 이렇게 많지는 않았습니다. 이야말로 여러분의 기쁨이자 여러분의 영광입니다.”

조부모, 한 민족의 지혜

교황의 마음속 깊은 곳에는 언제나 어린이들과 조부모들이 자리하고 있다. 아작시오에서도 교황은 이번 대림시기 동안 자기 자신과 노인들, 특히 조부모와의 관계를 돌아보라고 권고했다.

“여러분은 어르신들을 어떻게 대하고 계시나요? 그분들을 찾아뵙고 계신가요? 그분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시나요? 그분들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시나요? ‘아이고, 지루해. 옛날 이야기만 하시고 (…)’ 하며 등을 돌리시나요? 그분들을 홀로 내버려 두고 계시지는 않나요? 한 민족의 지혜인 어르신들을 돌봐 드리세요.”

미사 거행을 위해 마련된 제대
미사 거행을 위해 마련된 제대

마음의 준비

“그러면 저희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교황은 사람들이 세례자 요한에게 던진 이 질문으로 되물었다. “오늘 밤, 잠자리에 들기 전에 우리 각자는 이런 기도를 바칠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 성탄을 맞이하려면 제 마음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나요?’” 교황은 “오시는 주님을 맞이하기 위해 겸손하고 신뢰하는 마음으로 준비하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용감하게, 진실되게, 두려움 없이 주님께 여쭈어 보라고 권고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찾아주시도록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일은 바로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주님, 저는 죄인입니다.’ 이 자리에 있는 우리 모두가 죄인입니다. 한 사람도 예외가 없습니다. ‘주님, 저는 죄인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진실된 모습으로 예수님께 나아가도록 합시다. 거짓된 의로움으로 꾸민 모습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말입니다.”

움켜쥔 손

교황은 메시아를 기다리는 두 가지 영적 태도, 곧 의혹이 가득한 기다림과 기쁨에 찬 기다림에 대해 깊이 묵상했다. 첫 번째 태도는 “불신”과 “불안”이 특징이다. 이는 슬픔과 자기중심적 생각들, 미래에 대한 의심, 늘 파괴적인 영향을 미치는 근심을 동반한다. 교황은 “그리스도인은 이렇게 걱정하며 살면 안 된다”고 덧붙였다.

“오늘날 영적 질병이 얼마나 만연해 있는지요! 특히 소비주의가 범람하는 곳에서 말입니다! 소비주의로 살아가는 이런 사회는 만족을 모른 채 늙어갑니다. 주는 법을 모르기 때문이죠. 자신만을 위해 사는 사람은 결코 행복할 수 없습니다. (...) 나눔과 연대를 위해 손을 내밀지 않는 사람은 결코 행복할 수 없습니다. 이는 우리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유혹입니다. 평신도든, 사제든, 주교든, 추기경이든, 교황인 저 역시도 이 유혹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미사를 거행하는 프란치스코 교황
미사를 거행하는 프란치스코 교황

처방약은 믿음입니다

“하느님을 믿는 신앙이 희망을 줍니다!” 교황은 아작시오에서 열린 대중 신심에 관한 회의에서 강조한 내용이 바로 이것이라고 강조했다. 예를 들어 묵주기도는 “마리아의 관상적 시선으로 예수 그리스도께 마음을 모으는 법을 가르쳐준다”고 교황은 설명했다. 교황은 또 다른 예로 신심단체들의 봉사를 제시했다. “깊은 역사를 간직한 신자들의 단체는 교회의 전례와 기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전례를 민중의 성가와 대중 신심으로 더욱 아름답게 꾸며나갑니다.”

“신심단체 회원 여러분께 당부드립니다. 언제나 열린 마음으로 가까이 다가가 주세요. 특히 가장 약한 이들에게 가까이 다가가 믿음을 사랑의 실천으로 보여주세요. 특별한 신심을 간직한 신심단체라면 더욱 모든 이에게 다가가, 이웃 한 사람 한 사람을 돕는 일에 앞장서 주세요.”

기쁨에 찬 기다림

교황은 기쁨에 찬 기다림에 대해 묵상하며, 그리스도인의 기쁨은 “세속적이고 일시적인 즐거움”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우리 가운데 계시다는 확신에서 나온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이는 “우리 마음을 두드리시어 우울함과 권태에서 해방시키시는 구세주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으로 얻는 성령의 열매”라고 덧붙였다. 교황은 이런 방식으로 대림시기가 “모든 민족을 위한 미래로 가득한 축제가 된다”며 “예수님과 함께하면서 우리는 참된 삶의 기쁨을 발견하고, 세상이 기다리는 희망의 표징들을 나눌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우리 가운데 계시는 주님을 신뢰하세요. 그분은 지금도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자주 잊고 삽니다. 우리가 선행을 할 때, 자녀를 교육할 때, 어르신을 돌볼 때 주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반면에 우리가 험담을 하고 늘 남을 비방할 때는 주님께서 함께 계시지 않습니다. 그때는 우리만 홀로 있을 뿐입니다.”

끝으로 교황은 우리 마음속에 이러한 기쁨,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며 우리와 함께 걸으신다는 확신”을 증언하라고 초대했다. 

교황에게 전하는 인사

“기쁨의 주일이라 부르는 대림 제3주일 미사는 아작시오의 모든 신자들, 이 친교와 희망의 순간을 함께하고자 코르시카 전역과 프랑스 본토에서 오신 모든 분들에게 기쁨을 선사했습니다.” 아작시오교구장 프랑수아 자비에 부스티요 추기경은 오스테를리츠 광장에서 거행된 미사 말미에 이렇게 말했다. 부스티요 추기경은 “오만하지 않고 열등감 없는 그리스도교 신앙”이 삶의 기쁨을 재발견하는 데 필요한 복음의 소금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복음이 “우리가 더 나은 삶, 더 정의로운 삶, 더 평화로운 삶을 살도록 이끈다”고 덧붙였다. 부스티요 추기경은 11세기 사르텐 수도원에서 전해 내려온 양피지에 그린 성가집 악보를 교황에게 선물했다.

교황에게 성가집 악보를 선물하고 있다.
교황에게 성가집 악보를 선물하고 있다.

세상을 향해 활짝 열린 마음

교황은 “하루 종일 집에 있는 것처럼 편안하게 느꼈다”며 감사를 표했다. 이어 “서로 다름을 인정하되 갈라지지 않고, 모두의 공동선을 위해 함께 나아가자”고 권고했다. 교황은 코르시카 출신의 망베르티 추기경에게 인사를 전하고, 특히 독거 노인들과 병자들, 재소자들을 마음과 행동으로 가까이하라고 당부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여러분의 마음이 세상을 향해 활짝 열리길 기도합니다. 여러분이 간직한 소중한 전통은 마땅히 지키고 가꿔야 할 보화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결코 장벽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의 아름다운 전통을 품고 앞으로 나아가되, 그 발걸음은 언제나 서로를 만나고 나누는 길이 돼야 합니다.” 1만5000명의 촛불이 어둠을 밝히는 가운데, 성모님께 바치는 장엄한 성가로 미사가 마무리됐다.

아작시오 시장에게 전하는 인사

교황청 공보실은 교황이 오스테를리츠 광장에서 거행하는 미사를 위해 주교관을 떠나기 전, 아작시오 시장과 짧은 환담을 나눴다고 전했다. 이어 교황은 방명록에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남겼다고 공보실은 덧붙였다. “뿌리를 지키며 세상을 향해 열린 마음으로 나아가십시오. 이 축복의 말을 아작시오 시민 여러분께 전합니다. 따뜻한 환대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저는 여러분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여러분도 저를 위해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번역 이창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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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12월 2024, 20: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