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 메시지와 교황 강복(Urbi et Orbi) “무기를 내려놓고 담대히 정의로운 평화를 위해 협상에 나서십시오”
Isabella Piro
“무기를 내려놓으십시오!” 2024년 12월 24일 저녁 성 베드로 대성전 성문(聖門, Porta Santa)을 여는 예식을 거행하며 희년의 시작을 알린 프란치스코 교황은 12월 25일 성 베드로 대성전 ‘강복의 발코니’에서 ‘로마와 온 세상에’(Urbi et Orbi, 우르비 엣 오르비) 보내는 성탄 메시지를 전하며 이 절절한 호소를 여러 차례 반복했다. 아울러 하느님의 자비를 신뢰하며 두려움 없이 평화와 대화, 화해의 길로 담대히 나서자고 촉구했다.
두려워하지 마세요!
성 베드로 대성전 중앙 발코니에 모습을 드러낸 교황은 매서운 바람이 부는 날씨에도 성 베드로 광장을 가득 메운 3만여 명의 신자들을 따스한 눈길로 바라봤다. 광장은 희망처럼 맑고 청명했다. 광장에는 그라도에서 온 성탄 구유와 레드로에서 온 성탄 나무가 은은한 빛을 발하는 가운데, 스위스 근위병과 카라비니에리 헌병들의 화려한 제복과 깃털 장식이 교황청 국가와 이탈리아 국가에 맞춰 장중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교황의 표정에서는 “우리 시대의 고난 속에서” 고통받는 모든 이를 위로하고자 하는 깊은 사랑이 묻어났다. 로마의 주교(교황)는 1978년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교황 선출 때 했던 말을 되새기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형제자매 여러분, 두려워하지 마세요! 문이 열려 있습니다. 활짝 열려 있습니다! 두드릴 필요조차 없습니다. 열려 있습니다! 오십시오! 하느님과 화해합시다. 그러면 우리는 우리 자신과도 화해하고, 원수들까지도 포함해 서로 화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느님의 자비는 모든 것을 이룰 수 있습니다. 모든 매듭을 풀어주고, 모든 분열의 벽을 허물어뜨립니다. 하느님의 자비는 증오와 복수의 마음을 누그러뜨립니다. 오십시오! 예수님께서 평화의 문이십니다.”
고통받는 우크라이나
희년의 시작을 알리는 이번 성탄에 교황은 모든 사람, 모든 민족, 모든 나라에 “용감하게 성문을 통과해 희망의 순례자가 되고, 무기를 내려놓고 분열을 이겨내자”고 초대했다. 교황은 이날 새벽 러시아의 대규모 미사일 공격으로 여러 도시와 에너지 시설이 타격을 입은 우크라이나를 첫 번째로 생각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고통받는 우크라이나에서 무기를 내려놓으십시오! 정의롭고 항구한 평화를 이루기 위해 담대히 협상과 대화, 만남의 장으로 나서도록 합시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 평화를, 레바논·시리아·리비아에 대화를
교황은 중동 전역의 평화를 위해서도 같은 호소를 전했다.
“중동 지역에서도 무기를 내려놓으십시오! 베들레헴의 구유를 바라보며,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그리스도인 공동체, 특히 인도적 상황이 매우 심각한 가자지구의 그리스도인 공동체를 생각합니다. 전쟁을 끝내고, 인질들을 석방하며, 굶주림과 전쟁으로 지친 주민들을 도웁시다. 민감한 상황에 처한 레바논, 특히 레바논 남부 지역의 그리스도인 공동체와 시리아 그리스도인 공동체와도 함께합니다. 분쟁으로 찢긴 이 지역 전체에서 대화와 평화의 문이 열리길 바랍니다. 또한 리비아 국민들을 기억합니다. 그들이 국가적 화해를 이룰 수 있는 해법을 찾도록 격려합니다.”
아프리카의 인도적 위기
교황은 또한 아프리카 대륙의 고통받는 주민들의 목소리를 대변했다. 교황은 ‘홍역 전염병’이 창궐한 콩고민주공화국과 부르키나파소, 말리, 니제르, 모잠비크, 아프리카 뿔(소말리아 반도) 지역을 언급했다.
“이들이 겪는 인도적 위기는 무력충돌과 테러리즘이라는 재앙에서 비롯됐습니다. 이 위기는 수많은 인명을 앗아가고 수백만 명을 고향에서 내쫓는 기후변화의 참혹한 여파로 더욱 깊어지고 있습니다.”
교황은 이 모든 민족을 위해 “평화와 화합, 형제애의 은총”을 청했다. 특히 국제사회가 “수단의 민간인들을 위한 인도적 지원에 힘쓰고, 전쟁 종식을 위한 새로운 협상의 물꼬를 트는 데 앞장서 줄 것”을 촉구했다.
미얀마에 희망을, 아이티·베네수엘라·콜롬비아·니카라과에 정의를
교황은 끊임없는 무력충돌로 심각한 고통을 겪으며 강제로 집을 떠날 수밖에 없는 미얀마 주민들을 위해서도 평화를 기원했다.
또한 아메리카 대륙에 대해서도 특별한 관심을 표명했다.
“아기 예수님께서 아메리카 대륙의 정치 지도자들과 선의의 모든 이에게 영감을 주시어, 진리와 정의를 바탕으로 한 효과적인 해법을 하루빨리 찾아 사회적 화합을 이루길 바랍니다. 특히 아이티, 베네수엘라, 콜롬비아, 니카라과를 생각합니다. 이번 희년에는 특별히 모든 이의 공동선을 생각하고, 정치적 분열을 넘어 한 사람 한 사람의 존엄성을 되새기는 데 힘쓰길 바랍니다.”
키프로스를 위한 공동의 해법
교황은 세계 곳곳의 모든 “분리의 장벽”을 허물자고 촉구했다. 교황은 이념의 장벽이든 물리적인 장벽이든 모두 허물어야 한다고 호소하면서, “50년 넘게 이어진 분단으로 키프로스의 인간적, 사회적 토대가 무너져 내린 현실”을 짚었다.
“키프로스의 모든 공동체의 권리와 존엄성을 온전히 존중하면서, 분단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공동의 해법을 찾길 바랍니다.”
모든 생명의 신성함을 되새기며
교황은 예수님이 “모든 이를 위해 열린 구원의 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이 문을 지나 우리 존재의 의미와 모든 생명의 신성함을 다시 발견하고, 인류 가족의 근본 가치를 회복하도록 초대받았다”고 말했다. 아울러 주님께서 바로 그 문턱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신다고 말했다.
“주님께서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기다리십니다. 특히 가장 약한 이들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전쟁과 굶주림에 시달리는 모든 어린이들을 기다리시고, 홀로 버려져 쓸쓸히 살아가는 노인들을 기다리십니다. 집이 무너져 삶의 터전을 잃은 이들과 안전한 피난처를 찾아 집과 고향을 등져야 했던 이들을 기다리시고, 일터를 잃고 생계를 이어갈 길을 찾지 못하는 이들을 기다리십니다. 어떤 처지에 있든 변함없이 하느님의 자녀로 남아 있는 재소자들을 기다리시고, 신앙 때문에 박해받는 이들을 기다리십니다. 이처럼 고난 속에 있는 이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가장 가난한 나라의 부채 탕감
교황은 가난으로 고통받는 이들을 위한 호소도 잊지 않았다.
“희년이 부채 탕감의 기회가 되길 바랍니다. 특히 가장 가난한 나라들의 어깨를 짓누르는 부채를 덜어줘야 합니다.”
선한 일을 하는 이들에 대한 감사
전 세계가 직면한 수많은 어둠과 어려움 속에서도 교황은 “묵묵히 그리고 충실하게 선을 위해 헌신하는 이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아울러 “다음 세대를 키워내는 막중한 책임을 지고 있는” 부모와 교육자, 교사들을 비롯해 의료 종사자와 경찰 공무원, “세계 곳곳에서 고통받는 이들에게 희망의 빛을 비추고 따뜻한 위로를 전하는” 선교사들과 자선봉사자들에게 감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끝으로 교황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당신 성심의 문을 활짝 열어주신 것처럼” 주님께 우리 “마음의 문”을 열자고 초대했다.
“희망의 순례자 여러분, 주님께로 나아갑시다!”
교황이 성탄 메시지를 마친 후 ‘로마와 온 세상에’ 보내는 강복을 하기에 앞서 실바노 마리아 토마시 추기경(스칼라브리니회)과 함께 교황 곁에 있던 수석 부제 도미니크 맘베르티 추기경이 전대사 수여 선포를 했다. “이 자리에 참석한 모든 신자들은 물론 라디오와 텔레비전, 새로운 통신 매체를 통해 함께한 모든 이에게 전대사를 수여합니다.” 이후 교황이 성탄 강복을 내렸다.
번역 김호열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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