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특강 “바이러스 같은 세상의 영이 우리 ‘운영체제’를 변질시킵니다”
L’Osservatore Romano
교황청 강론 전담 라니에로 칸탈라메사 추기경이 3월 1일 오전 프란치스코 교황과 교황청 관료들을 대상으로 바오로 6세 홀에서 두 번째 사순특강을 진행했다. 칸탈라메사 추기경은 신앙과 이성에 관한 논쟁,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극단적인 비대칭성”의 영향을 받는 “이성과 계시에 관한” 논쟁에 초점을 맞췄다. “믿는 이는 무신론자와 이성을 공유하지만 무신론자는 믿는 이와 계시에 대한 신앙을 공유하지 않습니다.”
요한복음의 “나는 세상의 빛이다”(요한 8,12)라는 말씀을 성찰의 주제로 심화한 칸탈라메사 추기경은 신앙인이 “무신론자와 대화를 나눌 때 무신론자의 언어를 구사”하는 반면 무신론자는 “신앙인의 언어를 구사하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하면서 “신앙과 이성에 관한 가장 올바른 논쟁은 한 사람 안에서 일어나는 신앙과 이성의 논쟁”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인간 사상사에서 신앙과 이성에 똑같은 열정을 쏟았다는 데 의심할 여지가 없는 저명한 사상가들”로 히포의 주교 성 아우구스티노, 성 토마스 아퀴나스, 블레즈 파스칼, 쇠렌 키에르케고르, 성 존 헨리 뉴먼 등을 꼽았다.
이 인물들이 내린 결론은 “인간 이성의 최고의 행위는 이성보다 훨씬 더 우월한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라고 칸탈라메사 추기경은 강조했다. 또한 “이는 이성의 초월하는 능력을 드러내므로 이성을 가장 고귀하게 만드는 것”이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은총이 본성을 전제”하듯 신앙은 “이성에 반대되는 게 아니라 이성을 전제로 한다”고 설명했다.
칸탈라메사 추기경은 “세상의 빛”이라는 표현을 두고 두 가지 중요한 의미를 설명했다. 첫 번째는 그리스도께서 “인류에게 주신 하느님의 결정적이며 최고의 계시로서 세상의 빛”(히브 1,1-2 참조)이라며, 이러한 새로움은 “계시자인 그리스도께서 바로 계시라는 유일하고 비할 수 없는 사실”에 있다. 칸탈라메사 추기경은 예언자들이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라고 3인칭으로 말했지만 예수님께서는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라고 1인칭으로 말씀하셨다는 점을 상기했다. 이어 그리스도 안에서 “전달수단이 참으로 메시지이며 전달자가 메시지”라고 피력했다.
예수님께서 세상의 빛이라는 표현의 두 번째 의미로 칸탈라메사 추기경은 “세상에 빛을 비춘다는, 곧 세상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며, 하느님 앞에 있는 것처럼 올바른 빛으로 모든 것을 볼 수 있게 한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이러한 관점에서 빛이신 그리스도께는 “늘 인간 이성이라는 치열한 경쟁자가 있었다”고 덧붙였다.
칸탈라메사 추기경은 올해 사순특강의 주제로 요한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위대한 자기 계시인 “나는 (…) 이다”(Ego eimi)라는 말씀 묵상에 초점을 맞추면서 신앙과 이성의 대화에 관해 명확히 해야 할 또 하나의 오해를 언급하며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신앙인들을 향한 공통의 비판은 신앙인들이 도달해야 할 결론을 처음부터 신앙이 정해 놓기 때문에 신앙인들은 객관적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신앙이 선이해(pre-comprension)와 선입견과 같이 작용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신앙이 없는 과학자나 철학자에게도 이와 같은 선입견이 상반된 의미에서 더욱더 강렬한 방식으로 작용한다는 사실에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습니다. 하느님이 존재하지 않으며 초자연적인 것이 존재하지 않고 기적들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당연시한다면 그 결론도 처음부터 미리 정해져 있는 것입니다.”
칸탈라메사 추기경은 신앙과 이성 사이의 긴장을 해결할 수 있는 가능성은 “순수 이성의 한계 내에서” 신앙을 약화시키거나 순수 이성의 한계를 깨고 “도약”하는 두 가지뿐이라고 분명히 밝혔다. 아울러 이러한 토론은 “‘우리와 그들’ 사이, 곧 신앙인과 비신앙인들 사이의 논쟁에 앞서 신앙인 스스로의 논쟁이 돼야 한다”고 권고하면서 최악의 합리주의는 결국 “외부적인 측면에 기인하기보다 신학 내부에서 일어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칸탈라메사 추기경은 특히 서양에서 신학이 “점점 성령의 권능을 간과하고 인간의 지혜에 의존하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라고 말했다. “근대 합리주의는 그리스도교가 자신의 메시지를 변증법적인 방식으로 설명하도록 요구했습니다. 곧, 모든 측면에서 연구와 토론에 따라 메시지를 제시하라는 요구였죠. 인간의 운명과 우주에 대한 공통적이고 언제나 잠정적인 이해를 위한 일반적이고 철학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노력에 부합할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한다면,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선포는 무언가 다른, 더 우월한 것으로 간주되는 특이한 주장에 속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는 더 이상 케리그마(kerygma)가 아니라 많은 주장 중 하나가 되고 말겠지요.”
칸탈라메사 추기경은 신학에 대한 이러한 접근방식에 내재한 위험성을 지적했다. “하느님이 객관화됐다는 위험입니다. 이러한 하느님은 우리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현존하는 주체가 아니라 우리가 말하고 있는 객체, 곧 ‘그’ 또는 더 나쁘게는 ‘그것’이 되는 것이지 결코 ‘당신’이 되는 게 아닙니다. 이것이 바로 신학을 ‘과학’으로 만들어 버린 데 대한 역풍입니다. 과학에 종사하는 이들의 첫 번째 의무는 연구대상에 대해 중립적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느님과 관련돼 있을 때 중립적일 수 있습니까?” 칸탈라메사 추기경은 이러한 방식으로 전개하는 신학이 결국 “점점 더 당대의 학문적 엘리트들과 나누는 대화로 변질되고, 하느님 백성의 신앙을 위한 자양분을 점점 줄어들게 한다”고 개탄했다. 아울러 “하느님에 대해 말하기 전에 하느님과 함께 이야기하면서 기도해야 이러한 상황을 벗어날 수 있다”고 제시했다.
칸탈라메사 추기경은 사순특강을 마치기 전에 “세상의 빛”이라는 표현의 두 번째 의미를 다시 언급하면서 “모든 것을 비추며, 태양이 지구를 비추듯 세상을 비추는” 세상의 빛으로써 “도구적” 중요성을 강조했다. 아울러 이러한 의미에서 그리스도와 그분의 복음에는 “모든 이에게 가장 위험한 경쟁자”가 있다고 설명했다. “바로 세속주의입니다.” 칸탈라메사 추기경은 이 같은 세속주의가 “종교적·영적 영역을 비롯해 사회적 영역에서 우리가 말하는 세속화”라는 위험으로 이어진다고 덧붙였다.
칸탈라메사 추기경은 세속주의의 기원과 관련해 “여러 가지 원인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신앙의 위기”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바오로 사도가 “하느님의 성령”의 직접적인 적대자로 간주한 “세상의 영”을 언급했다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 가운데 여론이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이를 ‘허공을 부유하는 영’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전파를 통해, 가상 커뮤니케이션 매체를 통해 퍼지기 때문입니다.” 칸탈라메사 추기경은 “현시대의 영에” 스며들게 하는 유혹을 경고하며 “세상의 영이 좀먹는 행위”를 컴퓨터의 악성 바이러스에 비유했다. “이는 우리가 숨 쉬는 공기처럼 수천 개의 채널을 통해 침투합니다. 일단 침투한 다음에는 우리의 운영체제를 변질시킵니다. 곧, ‘그리스도’라는 운영체제가 ‘세속’이라는 운영체제로 대체됩니다.”
번역 안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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