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있는 이들을 위한 눈물의 선물
Andrea Tornielli
“주님께서는 믿지 않는 이들을 업신여기는 가혹한 판단이 아니라 사랑, 멀어진 이들에 대한 눈물을 원하십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3월 28일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성유 축성 미사를 집전하며 성유들을 축복하고 이 같이 눈물을 중심으로 강론했다. 이날 강론은 대사제의 집 안뜰에서 세 번이나 주님을 부인한 후 사슬에 묶인 예수님의 자비로운 시선과 잠깐 눈을 마주치면서 자신의 죄를 깨닫고 “슬피 울었던” 베드로 사도의 모습에서 시작됐다. 교황은 사제들을 위해 특별한 방식으로 봉헌된 이날 미사에서 함께한 형제 사제들을 대상으로 강론했지만, 그것은 사실 우리 모두를 아우르는 내용, 우리 모두를 위한 내용이기도 하다.
삶의 상황, 믿지 않는 이들과 우리와 논쟁하는 이들의 입장, 그리고 신앙 안의 형제자매들의 서로 다른 감수성을 마주하면서 우리는 마음에서 얼마나 자주 냉소적이고 업신여기는 판단을 내리는지 모른다. 때로는 십자가 밑에서 울려 퍼지는 조롱 섞인 판단과 별반 다르지 않은 판단을 내리기도 한다. 이러한 위험을 인식하려면 “집 안”을 먼저 들여다봐야 한다. 그리스도인으로 자처하는 이들의 소셜미디어와 블로그를 훑어보는 것만으로도 반대 입장과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조롱하는 태도를 알 수 있으며, 그것이 반복음적 증거라는 것을 쉽사리 깨달을 수 있다. 시야를 넓혀 무고한 희생자들을 끊임없이 양산하는 전쟁과 테러, 폭력을 부추기고 자라게 하는 혐오의 바다도 어찌 생각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리스도인은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말씀하신 사람이 되신 하느님을 따르는 사람이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편견과 타인에 대한 경멸적인 판단을 필요로 하지 않으시지만, 우리가 울고 사랑할 수 있을 때, 무관심의 거품에서 벗어나 타인의 고통으로 마음이 꿰찔릴 때, 하느님으로부터 멀리 있는 이들을 사랑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할 때, 그리고 우리가 비난하기보다는 의로운 사람, 구원받은 사람, 선한 사람, “괜찮은” 사람,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며 더 이상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사람의 울타리 밖에 있는 이들을 위해 눈물을 흘릴 때 비로소 우리를 껴안으시며 당신을 나타내 보이시는 분이시다.
교황은 사제들에게 “우리가 마음으로 뉘우친다면 매일 어려운 상황과 고통, 부족한 믿음과 마주치더라도 단죄가 아니라 인내와 자비로 반응하게 될 것”이라며 “가혹함과 비난, 이기심과 야망, 완고함과 불만에서 벗어나 우리 자신을 온전히 하느님께 맡기고 우리 주위에 몰아치는 폭풍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는 평온을 그분 안에서 찾으려면 얼마나 자유로워져야 하겠는가” 하고 되물었다. “주님께서 놀라운 일을 하시도록 다른 이들을 위해 기도하고 중재하며 우십시오. 그분께서 반드시 우리를 놀라게 하실 것이니 두려워하지 맙시다!” 골고타의 희생을 앞둔 용서받은 죄인인 그리스도인은 베드로의 눈물을 통해 자신이 비로소 그런 처지에 있음을 깨닫는다. 아울러 십자가에 못 박히신 분의 대가 없고 조건 없는 사랑에 자신을 열어 서로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용서를 모르는 세상에서 자비의 증인, 갈라진 세상에서 일치의 증인, 폭력과 전쟁이 만연한 세상에서 평화의 증인이 되는 법을 배운다.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능력이나 재능이 아니라 부활절 밤 예루살렘 무덤에서 일어난 일의 확신에 근거한 희망의 증인이 되는 법을 배운다.
번역 김호열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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