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롤린 추기경 “교황님은 유럽이 창립 가치를 재발견하도록 촉구하실 것”
Massimiliano Menichetti
며칠 전 아시아와 오세아니아 대륙을 방문하며 역대 최장 해외 사도 순방을 마친 프란치스코 교황이 다시 한번 해외 순방길에 오른다. 교황은 이번 순방을 통해 전쟁으로 상처 입고, 종종 분열되고, 인구 감소의 현실을 체감하고 있는 유럽의 심장부에서 그리스도의 얼굴을 지치지 않고 증거할 예정이다. 교황의 룩셈부르크·벨기에 사도 순방(9월 26-29일) 일정을 살펴보면, 9월 26일(현지시간) 룩셈부르크를 방문하고 같은 날 벨기에 수도 브뤼셀로 이동해 그곳에서 29일까지 머물 계획이다. 교황청 국무원 총리 피에트로 파롤린 추기경은 “유럽은 지금 과거의 엄청난 재앙을 어느 정도 잊고 있다”며 “이에 따라 그 당시의 비극적인 잘못을 반복할 위험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9월 22일부터 30일까지 제79차 유엔총회 참석차 미국 뉴욕에 머무르고 있는 파롤린 추기경은 교황의 이번 룩셈부르크·벨기에 사도 순방이 연대에 대한 통찰력과 미래를 향해 대담하게 마음을 여는 용기를 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하 파롤린 추기경과의 일문일답:
추기경님, 이번 순방은 룩셈부르크에서의 짧은 방문으로 시작됩니다. 교황님의 이번 순방은 어떻게 성사됐나요?
“이번 순방은 무엇보다도 벨기에 뢰번 가톨릭 대학교(KU Leuven) 설립 600주년 기념행사를 중심으로 한 사목 방문입니다. 이와 함께 룩셈부르크 방문도 계획돼 있습니다. 두 나라는 유럽연합 창립국으로, 유럽연합의 여러 기관들이 위치해 있는 중요한 나라들입니다. 가톨릭 신앙이 공식적으로 여전히 다수인 나라들이지만, 이제는 그 신앙이 삶의 중심에서 멀어지고 사회의 변두리로 밀려나는 현실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벨기에 주교단은 뢰번 가톨릭 대학교 설립 600주년을 맞아 이뤄지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방문을 “예상치 못한 놀라움”이자 “큰 기쁨”으로 표현했습니다. 교황님의 이번 순방이 과학과 신앙의 긴밀한 관계를 재조명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보시나요?
“신앙과 과학의 대화는 매우 중요합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두 분야는 오랜 기간 동안 상호 이해와 협력의 단계를 거치기도 했지만, 때로는 상호 오해가 발생한 순간들도 있었습니다. 이 오해는 서로 다른 분야의 방법론이 부당하게 혼재됐을 때 발생했습니다. 한편에서는 성경을 거룩한 경전이 아닌 과학 서적으로 오인하는 실수가 있었고, 다른 한편에서는 과학 지식을 유일한 진리로 여겨 이성의 역할을 과소평가하고 그 범위를 제한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벨기에 뢰번 가톨릭 대학교 설립 600주년을 맞아 이뤄지는 교황님의 벨기에 사도 순방은 신앙과 과학이 각자의 방법론과 영역에서 긴밀하게 연결돼 있음을 재발견하는 뜻깊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교황님은 생명이나 이주민 등 여러 사안에 대해 서로 다른 견해로 갈라진 유럽, 전쟁으로 상처 입은 유럽으로 다시 돌아오십니다. 이번 순방이 평화와 형제애, 연대에 기반한 발전을 추구했던 유럽연합의 국부들, 곧 로베르 쉬망, 알치데 데 가스페리, 콘라트 아데나워의 정신을 회복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까요?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유럽 사람들은 지칠 대로 지쳐 있었습니다. 세계대전 이전 30년간(1914-1945년) 유럽은 재앙과 고통으로 가득했고, 그로 인해 극단적 민족주의가 다시 부흥하지 않도록 새로운 질서를 구축하는 데 있어 결단력과 용기를 발휘하게 됐습니다. 그러나 현재 유럽에서는 과거의 엄청난 재앙에 대한 기억이 점차 사라져 가고 있으며, 그로 인해 당시의 비극적 잘못을 반복할 위험이 커지고 있습니다. 저는 교황님의 이번 순방이 유럽으로 하여금 건국정신을 다시 발견하는 소중한 기회가 되길 바랍니다. 1945년, 당시 유럽인들은 과거보다 나은 미래를 향해 힘차게 나아갔지만, 오늘날 유럽인들은 미래가 불확실하거나 최근의 과거보다 더 암울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삶에 대한 열린 마음가짐을 약화시키고, 희망이 머물지 않는 체념의 분위기를 퍼뜨립니다. 그러나 교황님은 희망의 순례자이십니다. 교황님은 유럽이 자신을 세운 근본이유들을 다시금 되새기길 원하십니다. 그래야만 경제 문제나 이주 문제와 같은 다양한 현안을 통찰력 있는 연대의 정신으로 해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교황님은 미래를 향해 다시 마음을 열고, ‘인구 절벽’을 극복할 용기를 되찾길 바라십니다.”
유럽 정치의 중심지를 방문하는 이번 순방이 두려움과 양극화, 포퓰리즘을 극복하는 데 이바지할 수 있을까요?
“포퓰리즘, 양극화, 두려움은 종종 영혼과 정신의 피로에서 비롯됩니다. 이로 인해 복잡한 문제들을 마치 마법처럼 단순하고 빠르게 해결할 수 있다는 기대가 생기곤 하죠. 이러한 피로감 속에서 사람들은 실현 불가능한 급진적인 제안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사람들은 그러한 공약에 매료되지만, 나중에 그 공약이 실현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 결과, 내용은 다르지만 단호한 발언들을 접하며 그와 유사한 또 다른 이야기에 쉽게 이끌리게 됩니다. 교회, 특히 교황님은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책임감과 절제의 언어를 통해 위험한 길을 경고하시며, 더 큰 잘못을 범하지 않도록 가르치십니다. 이러한 까닭에 교황님의 말씀은 쉽게 단순화할 수 없습니다. 교황님의 말씀이 즉각적인 해결책을 항상 제시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교황님의 말씀은 복음에서 나온 지혜의 말씀이며, 현실적인 관점을 제시합니다. 복음이 십자가 없는 천국을 약속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죠. 그러므로 교황님의 말씀은 다양한 이유로 지친 사람들에게 구원의 방안을 손쉽게 제시하는 사람들을 경계하고 비판적인 사고를 견지하도록 가르치십니다. 단순한 해결책은 일반적으로 재앙을 불러오는 결과로 이어집니다.”
점점 더 고령화되는 유럽에서 교황님은 출산율 급감 문제를 여러 차례 지적하셨습니다. 가정의 요구에 더 밀접한 사목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네, 그렇습니다. 출산율 급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주체들의 시급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교회, 국가 그리고 시민사회 단체들 모두 이 문제의 중요성을, 감히 말하자면 ‘생존과 직결된’ 현안임을 인식해야 합니다. 가능하다면, 이러한 주체들이 긴밀하게 협력해 잘 조율된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입니다. 사목적인 관점에서 볼 때, 가정의 실제 요구에 세심히 귀를 기울이고 그들의 삶 속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며 새 생명을 맞아들이는 데 장애가 되는 여러 요소들을 극복하는 프로그램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제가 덧붙이고 싶은 것은, 사람들의 마음과 정신에 희망을 심어주는 것이 최고의 가정 사목이라는 점입니다. 희망이 없고, 우리의 삶 속에서 하느님 섭리의 도움에 대한 깊은 확신이 없다면 그리고 하느님께서 주시는 도움에 마음을 열지 않는다면, 현실적인 어려움은 더 커 보이게 되고 이기적인 욕망이 더욱 쉽게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입니다.”
유럽은 자신의 정체성과 뿌리를 잃어버린 것 같습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교황청은 이러한 도전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나요?
“유럽 문명이 그리스-로마 문화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또한 유럽의 가치들은 유다-그리스도교 전통에 큰 빚을 지고 있습니다. 특히 그리스도교는 수세기에 걸쳐 유럽의 전반적인 지형을 새롭게 그려왔습니다. 유럽의 대성당들, 대학들, 예술 그리고 제도의 발전은 우리가 알고 있는 유럽을 형성한 수많은 증거들입니다. 그러나 유럽 헌법은 이러한 눈부신 문화적·종교적 유산과의 연계를 명시하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이는 그러한 유산이 분열을 초래할 수 있거나, 새로운 발전을 저해하는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습니다. 이 선택의 결과로 유럽은 정체성을 잃고 혼란이 깊어졌습니다. 유럽 통합에도 도움이 되지 않았죠. 유럽이 새롭고 중요한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되살아나는 이기주의를 극복하고 그 뿌리를 재발견할 필요가 있습니다. 유럽이 오늘날 세상에서 권위 있고 영향력 있는 목소리를 내고, 끝없는 교착 상태를 극복하려면, 자신을 이끈 위대한 가치를 다시 찾아야 합니다. 이는 현대 유럽의 창시자들이 소중히 여겼던 가치들이기도 합니다. 교황청은 이 중요한 시기에 유럽 민족들에게 자신감을 갖고 앞으로 나아가도록 격려할 수 있습니다. 또한, 유럽의 삶과 사회를 형성해온 가치들과의 강한 연대를 유지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조언할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유럽은 새로운 이상을 찾아내어, 오늘날의 복잡한 도전들을 헤쳐나갈 힘을 얻게 될 것입니다.”
교황님의 이번 순방에 어떤 기대를 품고 계신가요?
“교황님의 이번 룩셈부르크·벨기에 사도 순방이 더 큰 불을 밝히는 불씨가 되길 바랍니다. 그 불씨가 교회와 사회 안에 잠재된 선의 힘을 끌어내고, 어려움에 직면해 희망을 잃은 이들에게 용기를 북돋우는 빛이 되길 기대합니다. 이번 사도 순방이 유럽과 오늘날 유럽 교회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깊이 성찰하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또한 신자와 비신자 모두가 베드로 사도의 후계자(교황)의 말씀을 듣고, 그들의 삶과 행동방식을 복음의 가르침에 비춰보는 기회가 되길 바랍니다.”
번역 김호열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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