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바논 마론파 가톨릭교회 바트룬교구장 무니르 카이랄라 주교 레바논 마론파 가톨릭교회 바트룬교구장 무니르 카이랄라 주교 

레바논 카이랄라 주교 “레바논 사람들은 평화를 원합니다. 전쟁은 이제 끝냅시다. 용서하려면 용기가 필요합니다”

10월 5일 열린 교황청 공보실 기자회견에서 레바논 마론파 가톨릭교회 바트룬교구장 무니르 카이랄라 주교가 전쟁으로 고통받는 레바논의 현실을 전했다. 「바티칸 뉴스」가 발언 전문을 싣는다. 카이랄라 주교는 시노드 회의장에서도 “무엇보다 ‘타인’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자”고 초대했다.

Monsignor Mounir Khairallah, vescovo di Batrun dei Maroniti (Libano)

레바논 마론파 가톨릭교회 바트룬교구장 무니르 카이랄라 주교의 발언 전문 

저는 반세기 동안 불타는 고통의 세월을 감내해온 나라에서 왔습니다. 1975년, 레바논에서 전쟁이 시작됐습니다. 그 명분은 종교적, 교파적 갈등, 특히 무슬림과 그리스도교인 간의 대립이었습니다. 그러나 5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저희는 이 전쟁이 단지 종파나 종교 갈등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리지 못했습니다. 이 전쟁은 저희에게, 그리고 레바논이라는 이 땅에 피할 수 없이 주어진 시련이었습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이 늘 말씀하셨듯이, 레바논은 그 자체로 평화의 소명을 간직한 “메시지”이며,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는 나라입니다. 그것은 공존과 자유, 민주주의와 다양성을 존중하며 살아가라는 삶의 메시지입니다. 또한 프란치스코 교황님도 이러한 정신을 계승하고 계십니다. 

레바논은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는 나라이며, 앞으로도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는 나라로 남아야 합니다. 레바논은 그리스도교인, 무슬림, 유다인이 서로의 차이를 존중하며 함께 살아가는 보기 드문 “모범 국가”입니다. 이는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이 강조하신 바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곳 로마로 와서 시노드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더구나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이번 세계주교시노드 제16차 정기총회 제2회기의 표제로 삼으신 ‘용서’에 대해 말하는 것은 더욱 어렵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여기서 용서와 화해에 대해 이야기하러 왔습니다. 하지만 제 나라는, 레바논 사람들은, 여전히 전쟁과 분쟁, 폭력과 보복, 증오의 상처 속에서 고통받고 있습니다.

저희 레바논 사람들은 언제나 증오와 보복, 폭력을 거부하고 평화를 이룩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저희는 평화를 이룰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용서’라는 주제를 택하셨다는 것은 레바논 사람들 모두에게, 특히 저에게는 크나큰 메시지입니다. 전쟁의 포화가 레바논 전역을 덮고 있는 이때, 용서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불가능할까요? 아닙니다. 이 모든 상황 속에서도 레바논 사람들은 언제나 그랬듯이 증오와 보복의 언어를 거부합니다. 저 역시 용서를 깊이 체험한 적이 있습니다. 제가 다섯 살이었을 때, 누군가 저희 집에 찾아와 제 부모님을 잔인하게 살해했습니다. 저에게는 레바논 마론파 수녀회에 몸담고 계신 이모님이 계셨습니다. 그 이모님이 저희 집에 오셔서 저희 네 형제를 데려가셨습니다. 첫째는 여섯 살, 막내는 두 살이었죠. 이모님은 저희를 수도원으로 데리고 가셨고, 성당에서 무릎을 꿇고 자비와 사랑의 하느님께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모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죠. “너희 부모님을 위해 너무 많이 기도할 필요는 없단다. 그분들은 이미 하느님 앞에서 순교자다. 대신 너희 부모님을 죽인 사람을 위해 기도하고, 살아가면서 용서하도록 해라. 그렇게 해야만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진정한 자녀가 될 수 있다.” 

이모님은 저희에게 이렇게 기도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지.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인정을 받겠느냐?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박해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여라. 그러면 너희는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자녀가 될 것이다.’” 저희 네 형제는 이 말씀을 마음속에 깊이 새기고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단 한 번도 저희를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저희를 품어주시고, 동행하시며, 이 용서를 실천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셨습니다.

로마에서 신학생으로 공부를 마친 후, 저는 서품을 받기 위해 다시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저는 24살이었고, 부모님이 돌아가신 날을 제 서품일로 택했는데, 그날은 성 십자가 현양 축일 전날이었습니다. 이 축일은 동방 교회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축일입니다. 제가 이날을 선택한 이유는 단 하나였습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가르침을 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고 저는 말했습니다. “우리는 그 밀알의 열매입니다. 하느님께서 원하신 그 열매로 우리가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하느님의 뜻이며, 저희 부모님도 그 뜻을 받아들이셨고, 저희도 그 뜻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용서의 서약을 새롭게 합니다. 저에게 상처를 준 모든 이를 용서하겠습니다.”

몇 달 후, 저는 1977년과 1978년, 전쟁 초기의 레바논에서 청년들을 위한 피정 강연을 했습니다. 그때 저는 화해의 성사와 용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전하는 말이 청년들에게 전혀 전달되지 않는다고 느꼈습니다. 그들은 모두 전쟁 준비를 마치고, 적과 맞서 싸울 결심을 굳히고 있었습니다. 4시간 동안 대화를 나눈 후에도 그들에게 메시지가 전혀 전달되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의 개인적인 체험을 들려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겪었던 일들과 용서와 화해로 새롭게 살아가고 있음을 그들에게 이야기했습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습니다. 한 청년이 일어서서 저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습니다. “신부님, 신부님이 용서하셨다는 것은 잘 알겠습니다. 그런데 상상해 보세요. 지금 신부님이 고해실에 있는데 신부님의 부모님을 죽인 그 사람이 신부님 앞에서 고해하고 용서를 구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 질문에 답하는 것은 매우 고통스러운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질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 저는 진정으로 용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달았습니다. 사실 저는 용서했다고 생각했지만, 그 사람을 실제로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멀리서만 용서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 사람이 제 앞에 서게 된다면 (...) 저도 인간이기에 감정이 있습니다. 하지만 결국, 저는 그 사람에게 고해성사를 베풀고 용서할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레바논의 청년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왜 용서가 그토록 어려운지 이제야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저는 여러분을 이해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리스도의 땅에서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고자 한다면, 우리도 용서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용서하셨듯이, 우리도 용서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더 덧붙였습니다. “우리가 전쟁의 적으로 생각하는 이들, 곧 이스라엘인, 팔레스타인인, 시리아인 등 여러 민족은 실제로 적이 아닙니다. 왜냐고요? 전쟁을 부추기는 사람들은 정체성도, 신앙도, 종교도 없는 이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 곧 평범한 사람들은 평화를 원합니다. 그들은 평화의 임금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땅에서 평화롭게 살고자 합니다.”

그래서 오늘날, 이 50여 년간의 맹목적이고 야만적인 전쟁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문화와 신앙을 간직한 레바논 사람들은 지금도 평화를 원합니다. 레바논 사람들은 평화를 이룰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정치인들과 세계의 지도자들, 강대국들을 잠시 제쳐두고 이야기합시다. 그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우리를 이용하지만, 우리는 그 모든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단호히 거부합니다. 언젠가는 우리가 전 세계에 우리의 목소리를 내게 될 날이 올 것입니다. “이제 그만하십시오!” 보복도, 증오도, 전쟁도 이제 끝냅시다! 우리 아이들, 미래 세대를 위해서라도, 아이들이 평화롭게 살아갈 권리가 있음을 인정하고 평화를 건설하게 해 주십시오. 이것이 제가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메시지에서 깨달은 바입니다. 교황님은 시노드 정신으로 함께 걸어가자고 우리 모두를 초대하셨습니다. 시노달리타스는 이미 동방 교회에서 살아내고 있는 전통입니다. 교황님은 교회 전체에 용서와 화해, 개인과 공동체의 회심을 시작하라고 요청하셨습니다. 그렇게 해야 우리는 함께 하느님 나라를 세워가는 여정에 나설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해낼 것입니다! 

저는 이번 시노드를 통해 교회가 ‘함께 살아가는 삶’을 전하는 메시지의 주체가 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이는 상대방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존중하며, 대화를 통해 서로를 깊이 이해하고 배려하는 삶을 뜻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타인’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이 두려움은 우리 마음속 깊이 자리 잡고 있지만, 우리는 그 속박에서 벗어나야만 합니다. 이야말로 이번 시노드가 인류에게 전할 가장 중요한 첫 걸음이라고 믿습니다. 

번역 박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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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 10월 2024, 13: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