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기도는 하느님께로 우리를 데려갑니다”
번역 김호열 신부
기도에 대한 교리 교육 30. 소리 기도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세요!
기도는 하느님과의 대화입니다. 모든 피조물은 어떤 의미에서 하느님과 “대화합니다.” 인간 존재 안에서 기도는 말과 청원, 노래와 시, (…) 가 됩니다. 하느님의 말씀이 살이 되셨습니다. 모든 사람의 육신 안에서 말은 기도를 통해 하느님께 되돌아갑니다.
말은 우리가 만들어낸 것이지만, 말은 또한 우리의 어머니이기도 합니다. 어떤 면에서 말은 우리를 형성합니다. 기도의 말들은, 시편이 기도하라고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처럼, 원수들 앞에서 우리에게 상을 차려주며, 아무런 위험 없이 어둠의 골짜기를 지나가게 해주고, 물이 풍부한 푸른 풀밭으로 우리를 이끌어 줍니다(시편 23편 참조). 말은 감정에서 나오지만, 그와 반대인 경우도 있습니다. 곧, 말이 감정을 형성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성경은 사람들로 하여금 모든 것이 말을 통해 명확히 밝혀지도록 교육하고, 아무것도 인간을 배제하거나 검열하지 않도록 합니다. 특히 만일 고통이 감추어져 있고, 우리 안에 갇혀 있다면, 위험합니다. (…) 우리 안에 갇혀 있는 고통을 표현하거나 발산하지 않으면 영혼을 병들게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치명적입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성경은 때로는 대담하게 소리 내어 기도하라고 우리를 가르칩니다. 성경 저자들은 우리 인간들을 속이려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인간들의 마음속에 건설적이지 않은 감정들이, 심지어 증오가 빽빽이 채워져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 중 그 누구도 성인(聖人)으로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나쁜 감정들이 우리 마음의 문을 두드릴 때, 기도와 하느님의 말씀으로 그러한 감정들을 차단할 수 있어야 합니다. 시편 안에서 우리는 원수에 대응하는 매우 엄격한 표현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바로 영성 지도자들이 악마와 우리의 죄에 적용하도록 가르치는 표현들입니다. 그럼에도 그 말들은 인간의 현실에 속한 표현들이며, 성경의 고랑 안에 스며든 표현들입니다. 그 표현들은, 만일 부정적인 감정을 해롭지 않게 만들고 또한 무해한 방식으로 전달하기 위한 어떤 단어도 존재하지 않는다면 세상은 압도당할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증언하기 위해 존재합니다. (특히) 폭력에 직면했을 때 말입니다.
인간의 첫 번째 기도는 항상 말로 하는 것이었습니다. 기도할 때는 항상 먼저 입술이 움직입니다. 비록 기도하는 것이 말을 반복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우리 모두가 알고 있음에도 말입니다. 그럼에도 ‘소리 기도’*는 가장 안전하고 항상 바칠 수 있는 기도입니다. 반면 감정은 그것이 아무리 고상하더라도 항상 불확실합니다. 감정은 생겼다가 없어지며, 우리에게서 떠났다가 다시 되돌아오기도 합니다. 뿐만 아니라, 기도의 은총 또한 예측할 수 없습니다. 어느 순간에는 위로가 넘쳐나지만, 가장 어두운 날에는 모든 것이 증발해 버린 것처럼 보입니다. 마음으로 하는 기도는 신비스럽고, 특별한 순간에는 숨겨져 있습니다. 반면 입술로 하는 기도는, 혼자 속삭이든 함께 합송하든 항상 가능하며 수작업만큼이나 필요한 기도입니다. 『가톨릭교회 교리서』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소리 기도는 그리스도인 삶에 필수적인 요소이다. 스승이 침묵 중에 하시는 기도에 마음이 끌린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소리 내어 하는 기도인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 주셨다”(2701항). 제자들이 예수님께 “저희에게도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주십시오”라고 청하자, 예수님께서는 소리 내어 하는 기도를 가르쳐 주십니다. 바로 ‘주님의 기도’입니다. ‘주님의 기도’ 안에는 모든 것이 있습니다.
*역주: ‘소리 기도’는 틀이 갖추어진 기도문이나 마음속으로 생각한 기도문을 소리 내어 바치는 기도이며, 개인적으로 기도할 때는 물론 공동체가 함께 기도할 때 필요한 형태의 기도이다. 예전에는 ‘염경기도(念經祈禱)’라고 했으나, 지금은 개편 용어로 ‘소리 기도’라고 한다(「한국 천주교 예비신자 교리서」 참조).
몇몇 어르신들이 성당 안에서, 아마도 난청으로 인해 주변을 가득 채우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속삭이듯 자신들이 어렸을 때 배운 기도문을 외우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그분들의 겸손을 갖출 필요가 있습니다. 그분들의 이러한 기도는 침묵을 방해하지 않으며, 평생 동안 멈추지 않고 실천해 왔던 기도의 의무에 대한 충실성을 증거합니다. 겸손하게 기도를 바치는 이분들은 자주 본당 내에서 훌륭한 전구자들이기도 합니다. 그분들은 마치 해를 더할수록 가지가 자라나 많은 사람들에게 그늘을 제공하는 떡갈나무와 같습니다. 오직 하느님만이 그분들의 마음이 언제 그리고 얼마나 많이 소리 기도와 하나가 되었는지 알고 계실 것입니다. 분명히 이분들 역시 밤과 공허한 순간들을 직면해야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소리 기도를 드리는 것에는 항상 충실했습니다. 닻과 같이 말입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간에 자신들의 위치에 충실히 머무르기 위해 닻줄에 꽉 매달려 있는 닻과 같이 말입니다.
우리 모두는 유명한 영성 서적인 『이름 없는 순례자』에 나오는 러시아 순례자의 항구함을 배워야 합니다. 그 순례자는 “하느님의 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님, 죄인인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가톨릭교회 교리서』, 2616; 2667 참조)라는 똑같은 기도를 끊임없이 되풀이함으로써 기도의 기술을 배웠습니다. 그는 이 기도만 되풀이했습니다. 그의 삶에 은총이 깃들거나, 어느 날 우리 가운데 현존하는 하느님 나라의 존재를 인식할 수 있도록 기도가 뜨거워지거나, 그의 시선이 아이의 시선과 같이 변화된다면, 그것은 바로 그가 단순한 그리스도인 반복 기도를 암송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종국에 그 반복 기도는 그의 호흡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러시아 순례자의 이야기는 아름답습니다. 이 책은 모두가 쉽게 접할 수 있는 책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이 책을 읽으시길 권합니다. 이 책은 소리 기도가 무엇인지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소리 기도를 등한시해서는 안 됩니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에이, 이건 어린이들을 위한 기도입니다. 무식한 이들을 위한 기도입니다. 저는 하느님께서 오실 수 있도록 정신적 기도, 묵상, 내적 비움을 찾고 있습니다.” 제발 부탁드립니다. 소리 기도를 무시하는 오만에 빠지지 마십시오. 소리 기도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평범한 이들의 기도입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 우리가 하는 소리 기도는 우리를 이끌어 줍니다. 어느 순간에는 기도의 맛을 되찾게 해주며, 깊게 잠든 마음을 흔들어 깨우고,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고 있던 감정들을 깨웁니다. 또한 우리가 하느님 체험을 할 수 있도록 손을 잡고 이끌어 줍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안전한 방법으로, 하느님께서 듣고 싶어 하시는 질문을 그분께 할 수 있도록 해주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안개 속에 버려두지 않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너희는 기도할 때 이렇게 하여라”고 말씀하시며,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 주셨습니다(마태 6,9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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