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위일체는 ‘하나’가 ‘타자’ 없이 절대 있을 수 없음을 가르쳐 줍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6월 12일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 삼종기도 훈화를 통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성부와 성령을 소개해 주신다고 말했다. “삼위일체 대축일을 지내는 것은 신학적인 내용을 훈련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우리 삶의 방식에 혁명을 꾀한다는 뜻입니다.”

번역 이창욱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세요. 좋은 주일입니다!

오늘은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입니다. 오늘 전례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다른 두 위격, 곧 성부와 성령을 소개해 주십니다. 주님께서는 성령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분께서는 스스로 이야기하지 않으시고 들으시는 것만 이야기하시며, 또 앞으로 올 일들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다”(요한 16,13). 그런 다음 성부에 대해서도 말씀하십니다. “아버지께서 가지고 계신 것은 모두 나의 것이다”(요한 16,15). 성령께서 말씀하시되 당신 자신에 대해서는 말씀하시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합시다. 성령께서는 ‘예수님을 선포하시고 성부를 드러내십니다.’ 또한 만물의 근원이신 성부, 모든 것을 가지고 계신 성부께서 당신의 모든 것을 성자에게 주신다는 점에 주목합시다. 당신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으시고 ‘온전히 성자에게 내어 주십니다.’ 따라서 성령께서는 당신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하시는 게 아니라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하십니다.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존재, 타자에 대해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부께서는 당신 자신을 위해 아무것도 남겨두지 않으시고 온전히 성자에게 모든 것을 주십니다. 이는 서로에게 열린 관대함, 타자에게 열려 있음을 뜻합니다.

이제 우리 자신을 바라봅시다. 우리가 무엇에 대해 ‘말하고’ 무엇을 ‘소유하고’ 있는지 말입니다. 우리가 말을 할 때, 우리는 항상 우리 자신에 대해 좋게 말하고 싶어 합니다. 종종 우리는 우리 자신과 우리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만 말을 합니다. 얼마나 자주 그러는지요! “저는 이 일도 했고 저 일도 했습니다. (...)”, “저는 이런 문제가 있었습니다. (...)” 우리는 항상 이런 식으로 말을 합니다. 타자를 알리고 선포하심으로써 말씀하시는 성령, 그리고 성부와 성자와는 얼마나 다른지요! ‘우리가 소유한’ 것을 두고 우리는 얼마나 질투하는지 모릅니다. 우리가 소유한 것을 다른 이들, 특히 살아가는 데 필요한 기본적인 것들이 부족한 이들과 나누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요! 게다가 이에 대해 말하기는 쉬워도, 실천하기는 무척 어렵습니다.

지극히 거룩한 삼위일체 대축일을 지내는 것은 신학적인 내용을 훈련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우리 삶의 방식에 혁명을 꾀한다는 뜻입니다. 각 위격이 자기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지속적인 관계 안에서, 지속적인 상호작용 안에서 서로를 위해 사시는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타인들과 함께 타인들을 위해 살라고 부추기십니다. 열린 마음으로 말입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 삶이 우리가 믿는 하느님을 반영하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봅시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을 믿는 나는, 내가 살아가기 위해 다른 이들이 필요하다고, 다른 이들에게 나를 내어줘야 한다고, 다른 이들을 섬겨야 한다고 정말로 믿고 있는가? 나는 이를 말로 입증하는가, 아니면 내 삶으로 입증하는가?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한 분이시며 삼위이신 하느님께서는 말보다는 행동으로 드러내십니다. 생명을 지으신 하느님은 책이 아니라 삶의 증거로 전해지십니다. 요한 복음사가가 말한 대로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1요한 4,16). 하느님께서는 사랑을 통해 당신 자신을 드러내십니다. 우리가 만난 선량한 사람들, 너그러운 사람들, 온유한 사람들을 생각해 봅시다. 그들이 생각하는 방식, 그들이 행동하는 방식을 떠올리면, 우리는 사랑이신 하느님에 대해 작은 묵상을 할 수 있습니다. 사랑한다는 게 무슨 뜻일까요? 단순히 상대방을 좋아하고 잘 되기를 바랄 뿐 아니라, 다른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 가장 근본적인 것은 다른 이들을 받아들이고, 다른 이들에게 마음을 열고, 다른 이들을 위한 자리를 마련하고, 다른 이들에게 여지를 주는 일입니다. 이것이 사랑하는 것의 근본적인 의미입니다.

이를 더 잘 알아듣기 위해, 우리가 십자 성호를 그을 때마다 부르는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이름을 생각해 봅시다. 각각의 이름은 타자의 현존을 포함합니다. 예를 들면, 성부의 경우 아들이 없으면 아버지가 될 수 없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성자 역시 혼자일 수 없습니다. 항상 아버지의 아들로 존재합니다. 그리고 성령은, 성부의 영이시며 성자의 영이십니다. 요컨대 삼위일체는 하나가 타자 없이는 절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우리는 고립된 섬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모상대로 살기 위해 세상에 있는 것입니다. 다른 이들의 필요, 다른 이들을 돕는 데에 마음을 여십시오. 그렇다면 이제 마지막 물음을 던져봅시다. 매일의 삶에서 나도 삼위일체를 반영하는가? 내가 매일 긋고 있는 십자성호 – ‘성부와 성자와 성령’ – , 우리가 매일 긋고 있는 이 십자 성호는 단순히 기계적인 행동인가? 아니면 내가 말하고, 만나고, 반응하고, 판단하고, 용서하는 방식에 영감을 주는가?

우리가 사랑이신 하느님의 신비를 삶으로 받아들여 삶으로 증거하도록 성부의 딸, 성자의 어머니, 성령의 배필이신 성모님께서 도와주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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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6월 2022, 07:24

삼종기도(三鐘祈禱, 라틴어 Angelus 안젤루스)는 예수님 강생(降生) 신비를 기억하면서 하루에 세 번 바치는 기도다. (이 기도를 바치라는 표시로) 아침 6시, 낮 12시, 저녁 6에 종을 세 번씩 치면서 기도한다. 안젤루스(Angelus)라는 명칭은 라틴어로 시작하는 삼종기도 “Angelus Domini nuntiavit Mariae(주님의 천사가 마리아께 아뢰니)”의 첫 단어인 안젤루스(Angelus)에서 유래됐다. 삼종기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강생에 초점을 둔 세 개의 간단한 계응시구와 세 번의 성모송으로 구성된다. 또한 이 기도는 주일과 대축일 정오에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 모인 순례객들과 교황이 함께 바친다. 삼종기도를 바치기 전에 교황은 그날 독서에서 영감을 얻은 짤막한 연설을 한다. 기도를 바친 다음에 교황은 순례객들에게 인사한다. 주님 부활 대축일부터 성령 강림 대축일까지는 안젤루스 대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는 기도인 레지나 첼리(라틴어 Regina Coeli ‘하늘의 모후님’), 곧 부활 삼종기도를 바친다. 삼종기도는 세 번의 영광송을 바치면서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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