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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별은 어렵지만 모든 이의 삶에 반드시 필요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수요 일반알현 교리 교육의 새 주제는 ‘식별’이다. 이냐시오 영성의 핵심인 식별을 살피는 데 있어 지식, 경험, 감정, 의지는 함께 다뤄야 할 요소다. 식별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하느님 아버지와 자녀 관계를 맺어야 한다. 선택이란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자유의 열매다. “우리는 지구를 아름다운 정원으로 만들 수도 있고, 죽음의 사막으로 만들 수도 있습니다.”

번역 이재협 신부

식별에 대한 교리 교육  1. 식별이란 무엇인가?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세요!

지난주 ‘노년에 대한 교리 교육’을 마치고 오늘부터 우리는 ‘식별에 대한 교리 교육’을 시작합니다. 식별은 모든 사람과 관련된 중요한 행위입니다. 왜냐하면 선택이 인생에서 필수불가결한 몫을 차지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슨 공부를 할까, 무슨 일을 할까, 누구와 관계를 맺을까 선택합니다. 이 모든 선택 안에서 인생의 목표가 구체화되며, 하느님과 우리의 관계도 구체화됩니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일상에서 있을 법한 장면들로 식별을 설명하십니다.’ 예를 들어 마태오 복음 13장은 좋은 고기는 그릇에 담고 나쁜 고기는 밖으로 던지는 어부에 대해 말합니다. 또한 많은 진주 가운데 진정으로 값진 진주를 골라낼 줄 아는 상인, 밭을 갈다가 그 안에 숨겨진 보물을 우연히 발견한 사람도 묘사합니다(마태 13,44-48 참조).

이러한 사례에 비춰볼 때 식별은 적절한 순간을 포착하기 위한 ‘지성’의 행사, ‘숙련기술(perizia)’의 행사 그리고 ‘의지’의 행사로 나타납니다. 이러한 것들은 좋은 선택을 하기 위한 조건입니다. 또한 제대로 식별하기 위해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부는 최선을 다해 바다에서 밤을 지새우며 열심히 일한 다음, 좋은 물고기를 납품하기 위해 어획물의 일부를 버리는 손실을 감수해야 합니다. 진주 상인은 값진 진주를 사기 위해 주저하지 않고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팔아버립니다. 밭에 묻힌 보물을 우연히 발견한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뜻밖의 상황이나 예정에 없던 상황이 닥쳤을 때, 결단을 내려야 하는 시급성과 중요성을 인식하는 게 핵심입니다. 모든 사람은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우리 대신 결단해 줄 사람은 없습니다. 어떤 시기가 되면 어른들은 자유롭게 조언을 구하고 그에 대해 생각할 수 있지만, 결단은 자신의 몫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없습니다. “남편이 결정했기 때문에, 아내가 결정했기 때문에, 형이 결정했기 때문에 (...) 일을 망쳤습니다.” 아닙니다. 여러분이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우리 각자가 결정해야 합니다. 이러한 까닭에 식별할 줄 아는 게 중요합니다. 잘 결정하려면 식별하는 법을 알아야 합니다. 

복음은 식별의 또 다른 중요한 측면을 제시합니다. 식별은 ‘감정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가진 것을 다 파는 결정에 어려움을 느끼지 않습니다. 그 보물을 얻는 기쁨이 훨씬 크기 때문입니다(마태 13,44 참조). 마태오 복음사가가 사용한 기쁨이라는 용어는 인간적인 것이 줄 수 없는 매우 특별한 기쁨을 나타냅니다. 사실 하느님을 만난 모든 이에게 주어지는 이 기쁨은 복음서에 자주 나오는 표현이 아닙니다. 길고 힘든 여정 끝에 다시 별을 발견한 동방박사의 기쁨(마태 2,10 참조), 빈 무덤을 보고 낙심했다가 천사들에게 부활의 소식을 듣고 돌아오는 여인들의 기쁨(마태 28,8 참조) 정도가 있습니다. 이는 주님을 만난 이들의 기쁨입니다. 좋은 결정, 올바른 결정을 내리는 것은 항상 여러분을 기쁨으로 이끕니다. 아마도 그 과정에서 여러분이 약간의 불확실성을 겪고, 생각하고, 무언가를 찾아 헤매야 하겠지만, 결국 올바른 결정은 여러분을 기쁨으로 축복할 것입니다.

최후의 심판 때에 하느님께서는 우리와 관계된 것을 식별하실 것입니다. 위대한 식별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농부, 어부, 상인의 모습은 하느님 나라에서 일어나는 일의 예시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일상활동에서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 일상에서 우리는 우리 입장을 취해야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식별하는 법을 아는 게 매우 중요합니다. 훌륭한 선택은 언뜻 보기에 부차적인 일처럼 보이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그 진가가 드러납니다. 안드레아와 요한이 처음으로 예수님을 만난 요한 복음 1장을 생각해 봅시다. 그들의 첫 만남은 단순한 물음에서 시작됩니다. “라삐, 어디에 묵고 계십니까?” “와서 보아라”(요한 1,38-39 참조). 매우 짧은 문답이지만 두 제자의 삶의 변화가 서서히 시작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요한 복음사가는 몇 년 후 복음을 집필하면서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꾼 그 만남의 시간까지 정확히 기억합니다. “때는 오후 네 시쯤이었다”(요한 1,39). 그의 인생에서 시간과 영원이 만나는 때입니다. 좋은 결정, 올바른 결정 안에서 하느님의 뜻과 우리의 뜻이 만납니다. 현재의 길과 영원의 길이 만납니다. 식별의 여정을 거쳐 올바른 결정을 내리는 것은 시간과 영원의 만남을 이루는 일입니다. 

지식, 경험, 감정, 의지는 식별에 반드시 필요한 요소입니다. 식별에 관한 이번 교리 교육을 통해 이 중요한 요소들도 다룰 것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식별은 ‘수고’를 동반합니다. 성경에 따르면 우리는 사전에 마련된 식순에 따라 살아가는 존재가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앞으로 다가올 현실에 따라 끊임없이 결정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판단하고 선택하도록 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자유로운 존재로 창조하셨으며, 우리가 그 ‘자유’를 행사하길 원하십니다. 따라서 식별은 ‘어려운 일’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우리에게 좋을 것이라 생각하고 선택했으나 결국 좋지 않은 선택을 했던 경험을 합니다. 혹은 진정으로 우리에게 좋은 것이 무엇인지 알면서도 그것을 선택하지 않은 경험도 있습니다. 인간은 동물과 달리 틀릴 수 있고, 올바른 선택을 원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성경은 처음부터 이런 인간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곧, 하느님께서는 사람에게 명확한 지침을 내리십니다. ‘네가 살고자 한다면, 삶을 누리고 싶다면, 이를 기억하여라. 너는 피조물이며 선과 악의 기준은 너에게 있지 않다는 것, 너의 선택은 너에게, 네 이웃에게, 세상에 어떤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임을 명심하여라’(창세 2,16-17 참조). 우리는 지구를 아름다운 정원으로 만들 수도 있고, 죽음의 사막으로 만들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하느님과 인간의 첫 대화였다는 사실은 우연이 아닙니다. 그 대화에서 주님께서 사명을 주신다는 게 핵심입니다. 여러분은 이런저런 일을 해야 합니다. 모든 사람이 어떤 결정을 내릴지 식별해야 합니다. 식별이란 결정을 내리기 전에 우리가 해야 하는 마음의 성찰입니다. 

식별은 수고롭지만 살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일입니다. 식별을 위해서는 나 자신을 알아야 하고, 지금 여기에서 나에게 좋은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하느님 아버지와 자녀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아버지이시며 우리를 혼자 두지 않으십니다. 항상 우리를 가르치시고, 격려하시며, 받아주시는 분이십니다. 하지만 결코 당신의 뜻을 강요하지 않으십니다. 왜냐고요? 두려움이 아닌 사랑의 관계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느님께서는 노예가 아니라 자녀들을 원하십니다. 자유로운 자녀 말입니다. 사랑은 오직 자유 속에서만 살 수 있습니다. 사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는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식별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러한 선택지 사이에서 나는 지금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더 큰 사랑의 표지, 더 큰 성숙한 사랑의 표지가 되도록 합시다. 성령께 저희를 이끌어 달라고 청합시다! 특히 우리가 선택의 순간을 마주할 때마다 성령을 부르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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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8월 2022, 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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