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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산소’인 대화로 형제애를 발전시킵시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11월 9일 성 베드로 광장에서 열린 수요 일반알현 교리 교육을 통해 바레인 사도 순방 여정을 되짚었다. 교황은 이번 순방을 △대화 △만남 △여정 등 세 단어로 요약했다.

번역 김호열 신부

교리 교육:  바레인 사도 순방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세요!

제가 준비한 교리 교육을 시작하기에 앞서 제가 있는 이곳 단상에 올라왔다가 내려간 두 어린이에 주목하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여러 언어로 독서가 낭독되는 동안 두 어린이가 교황 가까이 다가왔다가 단상 아래로 되돌아 갔다]. 이 아이들은 저에게 오기 위해 아무런 허락도 구하지 않았습니다. “무서워요”라고 말하지도 않았습니다. 아이들은 곧장 저에게 다가왔습니다. 이 아이들은 우리가 어떻게 하느님을 대하고, 어떻게 주님을 대해야 하는지를 모범적으로 보여 주었습니다. 앞으로 나아가십시오! 주님께서는 항상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이 두 어린이의 신뢰를 보게 되어 기쁩니다. 이들은 우리 모두를 위한 모범이었습니다. 이처럼 우리도 항상 자유롭게 주님께 다가가야 합니다. 얘들아, 고맙구나. 

3일 전 저는 바레인 사도 순방을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저는 바레인에 대해 잘 몰랐습니다. 정말로 어떤 나라인지 잘 몰랐습니다. 기도와 함께 이번 순방에 함께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바레인 국왕을 비롯해 정부 당국자들, 바레인 교회와 바레인 국민들의 환대에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또한 이번 순방을 위해 애써준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많은 사람들의 노고가 있었습니다. 교황청 국무원은 연설문을 준비하고, 순방의 전반적인 것을 준비하는 등 많은 부분에 신경을 썼습니다. (…) 그리고 통역가들, (…) 바티칸 시국 헌병, 교황청 스위스 근위병 등 많은 이들이 수고하셨습니다. 아주 어마어마한 일을 하셨습니다! 교황의 순방이 순조롭게 이뤄질 수 있도록 애쓰신 모든 분들께 공개적으로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  

이런 물음이 자연스레 따라옵니다. ‘왜 교황은 무슬림이 대다수인 이 작은 나라를 방문하고 싶어하는가? 그리스도인이 대다수인 나라도 많은데, 왜 그런 나라부터 먼저 차례대로 방문하지 않는가?’ 이러한 물음에 저는 대화, 만남, 여정이라는 세 단어로 대답하고자 합니다.  

첫 번째 단어는 ‘대화(Dialogo)’입니다. 오랫동안 바라던 바레인 순방의 계기를 말씀드리자면, 바레인 국왕이 “대화를 위한 바레인 포럼”에 저를 초청함으로써 성사됐습니다. 대화는 다른 민족, 다른 전통, 다른 믿음에 속한 사람들의 풍요로움을 발견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많은 섬으로 이뤄진 나라 바레인은 우리가 고립되어 살지 않고 서로에게 가까이 다가가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바레인에서 우리는 서로 가까이 다가가고, 서로 만날 수 있었습니다. 평화의 대의가 이를 필요로 합니다. 대화는 ‘평화의 산소’입니다. 이를 잊지 마십시오. 대화는 ‘평화의 산소’입니다.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일 부부 사이에 전쟁이 일어난다면, 대화를 통해 평화롭게 나아갈 수 있습니다. 가정에서도 대화가 필요합니다. 대화로 풀어야 평화가 유지되기 때문입니다. 60여 년 전,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평화를 이룩하는 활동을 언급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평화가 오늘날 명백히 그들(국가 지도자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마음과 정신을 자기 나라의 국경 밖으로 넓혀 국가 이기주의와 타국 지배 야욕을 포기하는 것이며, 이제 더 큰 일치를 향하여 이토록 힘써 나아가는 온 인류에 대한 깊은 존경심을 기르는 일이다”(현대 세계의 교회에 관한 사목 헌장 『기쁨과 희망』(Gaudium et spes), 82항). 바레인에서 저는 이러한 필요성을 느꼈고, 전 세계 종교 및 사회 지도자들이 자신들의 국경과 공동체를 넘어 전체를 돌볼 수 있도록 권고했습니다. 오직 이런 식으로만 보편적인 몇몇 주제들, 예를 들어 하느님에 대한 망각, 굶주림의 비극, 피조물 보호, 평화와 같은 주제를 다룰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 함께 생각합시다. 그런 의미에서 “더불어 사는 인류를 위한 동서양(Est e Ovest per la coesistenza umana)”을 주제로 열린 “대화를 위한 바레인 포럼”은 우리에게 만남의 길을 택하고 대립의 길을 거부하라고 촉구했습니다. 우리가 만남을 얼마나 필요로 하는지요! 서로 만나는 것이 정말로 필요합니다! 저는 고통받는 우크라이나와 같은 희생자를 낸 어리석은 전쟁을 생각합니다. 어리석기 짝이 없는 전쟁입니다. 또한 유치한 전쟁 논리로는 결코 해결할 수 없는 다른 많은 분쟁도 생각합니다. 많은 분쟁은 대화의 온유한 힘으로만 해결할 수 있습니다. 고통받고 있는 우크라이나를 비롯해 수년 동안 이어지고 있는 내전들을 생각해 봅시다. 예를 들어 10년 넘게 내전 중인 시리아, 예멘의 전쟁 고아들, 미얀마를 생각해 봅시다. 여기저기서 전쟁이 터지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여기와 가까운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전쟁이 무엇을 합니까? 전쟁은 파괴합니다. 인류를 파괴하고, 모든 것을 파괴합니다. 갈등은 전쟁으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만남 없이는 대화도 없습니다. 두 번째 단어는 ‘만남(Incontro)’입니다. 바레인에서 우리는 서로 만났습니다. 그리스도인과 무슬림들 사이의 만남이 늘고, 더 돈독한 관계를 형성하고, 서로를 더 마음에 새기고 싶다는 열망이 일어나는 것을 저는 여러 번 느꼈습니다. 중동 지역의 관습처럼 바레인에서는 누군가와 인사할 때 가슴 위에 손을 얹습니다. 저도 제가 만나는 사람들을 위해 제 안에 그 사람을 위한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그렇게 했습니다. 왜냐하면 환대 없는 대화는 공허하고 외형적이며, 현실이 아닌 관념의 문제로 남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만남 중에 특별히 기억에 남는 것은 ‘사랑하는 형제’ 아흐메드 알타예브 알아즈하르의 대이맘과의 만남 그리고 ‘예수 성심 학교’의 젊은이들과의 만남이었습니다. 젊은 학생들은 우리에게 큰 가르침을 주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인과 무슬림들이 함께 공부하고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청소년 시절부터, 젊을 때부터 서로가 서로를 아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럼으로써, 형제적 만남이 이념적 분열을 막을 수 있습니다. ‘예수 성심 학교’ 관계자들, 이 학교를 잘 운영해온 학교장 로즐린 수녀, 증언과 기도와 춤과 노래로 만남에 참여한 젊은이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좋은 만남이었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그리고 원로들 또한 형제적 지혜에 대한 증거를 우리에게 선물했습니다. 곧, 근본주의와 폭력에 반대하고, 존중과 절제와 평화의 기치 아래 이슬람 공동체 사이의 우호적인 관계를 촉진하기 위해 몇 년 전 출범한 국제기구인 “무슬림원로위원회(Muslim Council of Elders)” 구성원들과의 만남에서였습니다. 

세 번째 단어는 ‘여정(Cammino)’입니다. 바레인 순방이 동떨어진 행사로 보여서는 안 됩니다. 이번 순방은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의 모로코 순방에서 시작된 여정의 한 부분입니다. 현직 교황이 처음으로 바레인을 방문했다는 것은 그리스도인과 무슬림 사이의 여정에 있어서 새로운 발걸음을 의미합니다. 서로의 믿음을 혼란스럽게 하거나 약화시키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하늘에 계신 유일하신 하느님, 평화의 하느님의 자비로운 시선 아래 이 땅의 순례자였던 신앙의 선조 아브라함의 이름으로 형제적 동맹을 맺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까닭에 이번 순방의 표어는 “땅에서는 선한 이들에게 평화!”였습니다. 제가 왜 대화가 믿음을 약화시키지 않는다고 말했을까요? 왜냐하면,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는 자신의 정체성이 있어야 하며, 바로 그 정체성에서 출발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정체성이 없으면,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기 때문에 대화를 할 수 없습니다. 대화를 잘 하기 위해서는 항상 자신의 정체성에서 출발해야 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자각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대화가 가능합니다. 

바레인에서의 대화, 만남, 여정은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도 이뤄졌습니다. 예를 들어 이번 순방 중 첫 번째 만남은 실제로 범교회적 만남이었습니다. 이 만남은 ‘사랑하는 형제’ 바르톨로메오 1세 세계 총대주교님을 비롯해 다양한 신앙고백과 전례를 거행하는 교회의 형제자매들과 함께했던 평화를 위한 기도회였습니다. 이 기도회는 ‘아라비아의 우리 어머니’께 봉헌된 주교좌성당에서 열렸습니다. 주교좌성당은 천막을 연상시킵니다. 성경에 따르면 하느님께서는 천막 안에서 광야의 여정 중에 있던 모세를 만나셨습니다. 바레인에서 제가 만난 같은 믿음을 공유하는 형제자매들은 정말로 “여정 중”에 있었습니다. 그들 중 대부분은 고향을 떠나 바레인으로 온 이주 노동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느님 백성들 사이에서 자신들의 뿌리를 찾았으며, 교회의 대가족 안에서 자신들의 가족을 찾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이주민들 – 필리핀인, 인도인, 다른 여러 나라에서 온 그리스도인들 – 이 함께 모여 믿음 안에서 서로를 지지하는 것을 보는 건 놀라운 일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하느님 안에 두는 희망이 결코 자신들을 실망시키지 않는다는 확신을 갖고 기뻐하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로마 5,5 참조). 마나마의 예수 성심 성당에서 열린 바레인의 주교, 사제, 남녀 축성생활자, 사목위원들과의 만남 그리고 바레인 국립경기장에서 거행한 감동적이고 기쁨으로 충만했던 미사에 참례한 신자들, 다른 걸프국가에서 온 많은 신자들에게 저는 온 교회의 애정을 전했습니다. 이상이 이번 순방의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저는 그들의 순수하고 소박하고 아름다운 기쁨을 여러분에게 전해주고 싶습니다. 함께 만나고, 함께 기도하면서 우리는 한 마음 한 영혼이라고 느꼈습니다. 그들의 삶의 여정, 그들의 일상의 대화 경험에 대해 생각하면서 우리 모두도 시야를 넓히라는 부름을 받았다고 느끼도록 합시다. 닫히고 굳은 마음이 아닌 넓은 마음을 부탁드립니다. 우리 모두는 형제자매입니다. 그러니 마음을 열어 인간의 형제애가 더 발전할 수 있도록 하십시오. 시야를 넓히십시오. 마음을 여십시오. 관심사를 넓히십시오. 다른 이들을 알기 위해 노력하십시오. 여러분이 다른 이들을 알아가는 데 노력한다면 결코 위협을 받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다른 이들을 두려워한다면, 여러분 스스로가 그들에게 위협이 될 것입니다. 형제애와 평화의 길을 걸어가기 위해서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필요합니다. 내가 손을 내밀 때 상대방이 다른 손을 내밀어 주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성모님, 저희의 이 여정을 도우소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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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 11월 2022,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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