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삶을 내팽개치는 건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유일한 것”

프란치스코 교황이 6월 25일 연중 제12주일 삼종기도 훈화를 통해 폭력과 박해가 난무하는 오늘날에도 복음에 충실하는 게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아울러 오늘날에는 사람 대신 사물을, 관계 대신 성과를 좇는 것과 같은 부차적인 현실에 우선순위를 두고 산다고 지적하며 “효율성과 소비주의라는 우상 앞에서 약간의 포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세요. 좋은 주일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 제자들에게 “두려워하지 마라”(마태 10,26.28.31)는 말씀을 세 번이나 반복하십니다. 이에 앞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복음을 위해 겪어야 할 박해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박해는 오늘날에도 벌어지는 현실입니다. 사실 교회는 처음부터 기쁨과 함께 – 많은 기쁨을 누렸습니다! – 많은 박해를 겪었습니다. 하느님 나라의 선포가 형제애와 용서에 기반한 평화와 정의의 메시지인데도 반대와 폭력, 박해에 직면한다는 게 역설적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의 모든 일이 다 잘 될 것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런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 아버지께 우리가 소중하고, 좋은 것은 아무것도 잃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두려움이 우리를 가로막지 말아야 한다고 말씀하시면서 오직 한 가지만 두려워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두려워해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이 무엇일까요?

오늘 예수님께서 사용하신 이미지, 곧 “게헨나”(지옥)의 이미지(28절 참조)를 통해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봅시다. “게헨나” 골짜기는 예루살렘 주민들이 잘 알고 있던 장소였습니다. 그곳은 도시의 큰 쓰레기장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정말로 두려워해야 할 것은 ‘자신의 삶을 버리는 것’, ‘자신의 삶을 내팽개치는 것’임을 말씀하시려고 그 이미지를 가져오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래, 바로 그것을 두려워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복음에 충실하기 위해 오해나 비난을 받고 명성이나 경제적 이익을 잃는 것을 두려워할 게 아니라, 삶을 의미로 채우지 못하는 사소한 것들을 좇아 자신의 실존을 허비하는 걸 두려워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과 같습니다. 

이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중요합니다. 사실 오늘날에도 특정 유행을 따르지 않는다는 이유로 조롱이나 차별을 받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는 사람 대신 사물을, 관계 대신 성과를 좇는 것과 같은 부차적인 현실을 중심에 두고 사는 것과 같습니다. 한 가지 예를 들어봅시다. 저는 부모님들이 생각납니다. 부모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일을 해야 하지만, 일만 하기 위해 살 수는 없고 자녀와 함께할 충분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또한 저는 사제나 수녀도 생각합니다. 이들은 봉사에 헌신해야 하지만 예수님과 함께하는 시간을 내팽개치지 말아야 합니다. 그 시간을 내지 않으면 영적 세속주의에 빠져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한 감각을 잃게 됩니다. 또한 저는 젊은이들도 생각합니다. 이들은 학교, 스포츠, 다양한 관심사, 휴대폰, 소셜미디어 등에 열정을 쏟습니다. 하지만 젊은이들은 아무런 의미도 남기지 않은 채 사라지고 마는 일에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사람들을 만나며 원대한 꿈을 실현해야 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이 모든 것은 효율성과 소비주의라는 우상 앞에서 약간의 포기를 요구합니다. 그러나 이는 그 당시 게헨나에 물건을 버렸던 것처럼 버려지는 것들 속에서 자기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해 필요한 일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이 자주 오늘날의 게헨나에 버려집니다. 종종 폐기물이나 불필요한 물건으로 취급받는 최하층 사람들을 생각해 봅시다. 중요한 것에 충실하기 위해서는 대가가 따릅니다. 시류에 역행하려면 대가가 따르고, 대중의 의견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대가가 따릅니다. “시류를 따르는” 이들에게서 멀어지는 일을 감수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런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가장 큰 선, 곧 삶을 내팽개치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삶을 내팽개치지 않는 것, 이것이 바로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유일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스스로에게 이렇게 물어봅시다. 나는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내가 좋아하는 것을 갖지 못해서 두려운가? 사회가 강요하는 목표에 도달하지 못해서 두려운가? 다른 이들의 판단 때문에 두려운가? 아니면 주님을 기쁘게 해 드리지 못하고 그분의 복음을 첫째로 두지 않아서 두려운가? 영원한 동정녀이시며 지혜로우신 어머니 성모님, 저희가 지혜롭고 용감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번역 이창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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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6월 2023, 01:25

삼종기도(三鐘祈禱, 라틴어 Angelus 안젤루스)는 예수님 강생(降生) 신비를 기억하면서 하루에 세 번 바치는 기도다. (이 기도를 바치라는 표시로) 아침 6시, 낮 12시, 저녁 6에 종을 세 번씩 치면서 기도한다. 안젤루스(Angelus)라는 명칭은 라틴어로 시작하는 삼종기도 “Angelus Domini nuntiavit Mariae(주님의 천사가 마리아께 아뢰니)”의 첫 단어인 안젤루스(Angelus)에서 유래됐다. 삼종기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강생에 초점을 둔 세 개의 간단한 계응시구와 세 번의 성모송으로 구성된다. 또한 이 기도는 주일과 대축일 정오에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 모인 순례객들과 교황이 함께 바친다. 삼종기도를 바치기 전에 교황은 그날 독서에서 영감을 얻은 짤막한 연설을 한다. 기도를 바친 다음에 교황은 순례객들에게 인사한다. 주님 부활 대축일부터 성령 강림 대축일까지는 안젤루스 대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는 기도인 레지나 첼리(라틴어 Regina Coeli ‘하늘의 모후님’), 곧 부활 삼종기도를 바친다. 삼종기도는 세 번의 영광송을 바치면서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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