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그분처럼 모든 이를 맞아들이기 위해 언제나 문을 활짝 엽시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6월 4일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 삼종기도 훈화에서 ‘식탁에 둘러앉은 가족’의 모습을 통해 하느님을 생각할 수 있다며 “우리가 어렸을 때부터 배운 가장 단순한 몸짓, 곧 십자성호를 통해” 그분을 기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다음과 같은 물음을 던졌다. “우리는 사랑이신 하느님을 증거하고 있는가? 아니면 사랑이신 하느님이 더 이상 우리 삶을 움직이거나 자극하지 않는, 이미 들어본 개념으로 변질되어 버린 것은 아닌가?” 또한 교회와 관련해 다음과 같이 자문해 보자고 초대했다. “우리는 내 집 같은 편안한 분위기를 조성하는가, 아니면 사무실이나 예약한 사람들만 들어갈 수 있는 특권적인 장소를 더 닮아가고 있는가?”

번역 이창욱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세요!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인 오늘 복음은 니코데모와 나눈 대화를 다루고 있습니다(요한 3,16-18 참조). 니코데모는 유다인들의 최고 의회의 의원으로, 하느님의 신비에 대한 열정을 보인 인물입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거룩한 스승이심을 깨닫고 밤에 몰래 그분과 대화를 나누러 갑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의 말을 들으시고, 그가 하느님을 탐구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보십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위로부터 태어나야 한다고 대답하시며 먼저 그를 놀라게 하십니다. 그런 다음 하느님께서 인류를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당신의 아드님을 세상에 보내셨다고 말씀하시면서 그에게 하느님 신비의 핵심을 드러내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외아들이신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아버지와 그분의 무한한 사랑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아버지와 아들’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이는 하느님에 대한 우리의 편협한 상상을 깨부수는 친숙한 이미지입니다. 사실 “하느님”이라는 단어는 우리에게 유일하고 장엄하며 먼 실재를 암시하는 반면, 아버지와 아들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를 집으로 데려다 줍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식탁에 둘러앉아’ 삶을 나누는 ‘가족’의 이미지를 통해 하느님을 이런 방식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제대이기도 한 식탁은 특정 성화가 삼위일체를 묘사한 상징이기도 합니다. 그 이미지는 우리에게 ‘친교이신 하느님’을 말해줍니다. 성부, 성자, 성령은 ‘친교’를 이루십니다.

하지만 이는 단순한 이미지가 아니라 현실입니다! 성부께서 성자 예수님을 통해 우리 마음에 부어주신 성령(갈라 4,6 참조)께서 우리로 하여금 하느님의 현존, 항상 가까이 계시고 자비로우시며 온유한 사랑을 보여주시는 하느님의 현존을 맛보게 하시므로 현실이 됩니다. 성령께서는 예수님께서 니코데모에게 하신 일을 우리에게도 행하십니다. 곧, 우리에게 새로 태어남의 신비, 다시 말해 믿음의 탄생, 그리스도인 삶의 탄생을 소개해 주시고, 아버지의 마음을 드러내 주시며, 우리를 하느님의 생명에 참여하는 이들로 삼아주십니다.

성령의 초대는 하느님과 함께 식탁에 앉아 그분의 사랑을 나누라는 초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앞서 말씀드린 그 이미지의 의미입니다. 미사 때마다 성찬의 제대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성찬의 제대에서 성부께 당신 자신을 바치시고 우리를 위해 당신 자신을 내어 주십니다. 그렇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 하느님은 ‘사랑의 친교’이십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그분을 계시하신 방식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느님을 어떻게 기억할 수 있는지 아시나요? 우리가 어렸을 때부터 배운 가장 단순한 몸짓, 곧 십자성호를 통해서입니다. 우리 몸에 십자성호를 그으면서 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를 위해 당신의 목숨을 바치실 만큼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기억하게 됩니다. 십자성호를 통해 우리는 그분의 사랑이 우리를 결코 내버려두지 않는 포옹처럼 위에서 아래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우리를 완전히 감싸고 있음을 우리 스스로 반복하게 됩니다. 이와 동시에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을 증거하고 그분의 이름으로 친교를 이루기로 다짐합니다. 이제 우리 각자, 우리 모두가 함께 십자성호를 그어봅시다. [십자성호를 긋는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볼 수 있습니다. 곧, 우리는 사랑이신 하느님을 증거하고 있는가? 아니면 사랑이신 하느님이 더 이상 우리 삶을 움직이거나 자극하지 않는, 이미 들어본 개념으로 변질되어 버린 것은 아닌가? 하느님이 사랑이시라면, 우리 공동체는 이를 증거하고 있는가? 사랑하는 방법을 알고 있는가? 우리 공동체는 사랑하는 방법을 알고 있는가? 그리고 우리 가족은 어떠한가? 우리는 가족 안에서 사랑하는 방법을 알고 있는가? 우리는 언제나 문을 활짝 열어 두는가? 모든 이, 저는 ‘모든 이’라는 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모든 이를 형제자매로 맞아들이는 방법을 알고 있는가? 우리는 모든 이에게 하느님의 용서와 복음의 기쁨이라는 양식을 마련하고 있는가? 우리는 내 집 같은 편안한 분위기를 조성하는가, 아니면 사무실이나 예약한 사람들만 들어갈 수 있는 특권적인 장소를 더 닮아가고 있는가?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느님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시고 우리를 위해 생명을 내어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십자성호를 긋는 것입니다.

성모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친근한 방식으로 사랑을 나누는 집처럼,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영광을 돌리는 집처럼 교회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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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6월 2023, 14:42

삼종기도(三鐘祈禱, 라틴어 Angelus 안젤루스)는 예수님 강생(降生) 신비를 기억하면서 하루에 세 번 바치는 기도다. (이 기도를 바치라는 표시로) 아침 6시, 낮 12시, 저녁 6에 종을 세 번씩 치면서 기도한다. 안젤루스(Angelus)라는 명칭은 라틴어로 시작하는 삼종기도 “Angelus Domini nuntiavit Mariae(주님의 천사가 마리아께 아뢰니)”의 첫 단어인 안젤루스(Angelus)에서 유래됐다. 삼종기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강생에 초점을 둔 세 개의 간단한 계응시구와 세 번의 성모송으로 구성된다. 또한 이 기도는 주일과 대축일 정오에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 모인 순례객들과 교황이 함께 바친다. 삼종기도를 바치기 전에 교황은 그날 독서에서 영감을 얻은 짤막한 연설을 한다. 기도를 바친 다음에 교황은 순례객들에게 인사한다. 주님 부활 대축일부터 성령 강림 대축일까지는 안젤루스 대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는 기도인 레지나 첼리(라틴어 Regina Coeli ‘하늘의 모후님’), 곧 부활 삼종기도를 바친다. 삼종기도는 세 번의 영광송을 바치면서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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