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는 사목지침서를 실행하는 게 아니라 성령의 역사하심입니다”
복음화를 위한 열정: 신앙인의 사도적 열정에 대한 교리 교육
29. 성령 안에서의 복음 선포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세요!
최근 우리는 사도적 열정에 관한 교리 교육 여정의 세 가지 요점, 곧 복음 선포는 ‘기쁨’의 선포, ‘모든 이를 위한’ 선포, ‘오늘을 위한’ 선포라는 점을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네 번째이자 마지막 요점을 살펴보겠습니다. 이 요점에 본질적인 특징이 담겨 있습니다. 곧, 복음 선포는 ‘성령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실로 “하느님을 전하기” 위해서는 기쁘게 증거하는 것에 대한 신뢰성, 선포의 보편성, 그리스도교 메시지의 적시성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성령이 없다면 모든 열성은 헛되고 사도적일 수 없습니다. 성령이 없다면 우리 자신의 개인적인 열성일 뿐 아무런 열매도 맺지 못할 것입니다.
저는 교황 권고 「복음의 기쁨」(Evangelii gaudium)에서 다음과 같이 일깨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최초의 가장 위대한 복음 선포자’이십니다. 모든 복음화 활동의 수위권은 언제나 하느님께 있으며,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부르시어 당신께 협력하게 하시고 성령의 힘으로 우리를 이끌고자 하십니다”(12항). 여기에 성령의 수위권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하느님 나라의 역동성을 이렇게 비유로 설명하십니다. “하느님 나라는 이와 같다. 어떤 사람이 땅에 씨를 뿌려 놓으면, 밤에 자고 낮에 일어나고 하는 사이에 씨는 싹이 터서 자라는데, 그 사람은 어떻게 그리되는지 모른다”(마르 4,26-27). 성령께서 주인공이시며, 언제나 선교사들보다 앞서 가시어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이를 깨닫는 것이 우리에게 큰 위안이 됩니다! 이에 더해 결정적인 사실 하나를 밝히는 데 도움이 됩니다. 곧, 교회는 자신만의 사도적 열성으로 자기 자신을 선포하는 게 아니라,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은총과 은사이며 하느님의 ‘선물’(요한 4,10 참조)이신 성령 안에서 복음을 선포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수위권이 우리를 태만하게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신뢰는 무책임을 정당화하지 않습니다. 씨앗이 스스로 자라나는 생명력을 가지고 있지만 농부가 밭을 소홀히 가꿀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로 오르시기 전 마지막으로 권고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내리시면 너희는 힘을 받아 (…) 땅 끝에 이르기까지 나의 증인이 될 것이다”(사도 1,8).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신학 강의 책자나 사목지침서를 남기신 게 아니라 선교 사명을 고취시키는 성령을 남겨 주셨습니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심어 주시는 단호한 결단력은 ‘창의성’과 ‘단순성’이라는 두 가지 특성을 간직하신 성령의 방식을 본받도록 우리를 이끕니다.
‘창의성’은 예수님을 기쁘게 선포하고, 모든 이를 위해 선포하며, 오늘 선포하는 데 있어 반드시 필요합니다. 우리 시대는 우리가 삶에 대한 종교적 관점을 갖는 데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으며, 복음 선포는 여러 지역에서 갈수록 어렵고도 힘들며 겉보기에 아무런 결실이 없는 것 같습니다. 이에 따라 사목 활동을 그만두고 싶은 유혹이 생길 수 있습니다. 늘 하던 일을 습관적으로 반복하거나, 개인주의 영성의 솔깃한 유혹에 빠지거나, 심지어 전례의 중심성을 오해하며 안전지대로 피신할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유혹들은 전통에 대한 충실이라는 탈을 쓰고 위장하지만, 성령께 대한 응답이라기보다는 개인적인 불만에 대한 반응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성령 안에서의 담대하고 성령의 선교적 열정으로 타오르는 사목적 창의성이야말로 주님께 대한 충실함의 증거입니다. 그래서 저는 교황 권고 「복음의 기쁨」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또한 당신을 가두어 두려는 우리의 진부한 도식을 깨뜨리실 수 있고, 하느님이신 당신의 끊임없는 창조력으로 우리에게 놀라움을 주십니다. 우리가 원천으로 돌아가 복음 본연의 참신함을 되찾고자 노력할 때마다 새로운 길들이 드러나고 창조적 방식들이 보이며, 또 다른 형태의 표현들과 더욱 설득력 있는 기호들과 오늘날의 세계에 새로운 의미를 갖는 어휘들이 생겨날 것입니다”(「복음의 기쁨」, 11항).
두 번째 특징은 ‘단순성’입니다. 바로 성령께서 우리를 근원, 곧 “첫 선포”(케리그마, kerygma)로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실로 “성령의 불은 (…)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도록 이끕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죽음과 부활로 아버지의 무한한 자비를 드러내시고 전해 주십니다”(「복음의 기쁨」, 164항). 이것이 바로 울려 퍼져야 할 “첫 선포”입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여러분을 사랑하시고, 여러분을 구원하시고자 당신 생명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날마다 여러분 곁에 사시면서 여러분을 깨우치시고 힘을 주시고 자유롭게 해 주십니다”(「복음의 기쁨」, 164항).
형제자매 여러분, 성령에 사로잡힐 수 있도록 우리 자신을 내어 맡기고 매일 성령께 청합시다. 성령께서 우리 존재와 활동의 원천이 되시고 우리의 모든 활동과 만남, 선포의 시작이 되시길 청합시다. 성령께서 교회에 생기와 활력을 불어넣어 주십니다. 그분과 함께라면 우리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일치이신 성령께서는 언제나 창의성과 단순함을 함께 간직하시며, 친교를 고취시키시고, 선교로 파견하시며, 다양성을 향해 마음을 열어 주시고, 다시금 일치로 이끄시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는 우리의 힘, 우리가 행하는 복음 선포의 숨결이시며 사도적 열성의 원천이십니다. 오소서, 성령님!
번역 김호열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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