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따분하고 무의미할 때 ‘믿음의 인내’가 우리를 구원합니다”
교리 교육: 악덕과 미덕 8. 나태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세요!
모든 치명적인 악덕 중에는 명칭 때문에 종종 간과되는 악덕이 있습니다. 그 명칭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경우가 많죠. 바로 ‘아치디아’(accidia, 나태, 게으름)입니다. 이러한 까닭에 악덕 목록에서 이 명칭은 종종 ‘피그리지아’(pigrizia, 나태, 게으름)라는 훨씬 더 일반적인 표현으로 대체되곤 합니다. 실제로 나태는 원인이라기보다는 결과에 더 가깝습니다. 어떤 사람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빈둥거리고, 아무런 열정이 없을 때 우리는 게으르다고 말합니다. 고대 사막 교부들의 지혜에서 알 수 있듯이 ‘피그리지아’의 뿌리는 ‘아치디아’입니다. ‘아치디아’는 그리스어로 “돌봄의 결핍”(mancanza di cura)을 뜻합니다.
나태는 매우 위험한 유혹이므로 절대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됩니다. 나태의 유혹에 빠지면 죽고 싶은 마음에 짓눌리는 것과 같습니다. 모든 것에 혐오감을 느끼고, 하느님과의 관계를 따분하게 느끼며, 과거에는 자신의 마음을 따스하게 녹였던 가장 거룩한 행위들조차도 이제는 전혀 쓸모가 없어 보이게 됩니다. 흘러가는 시간과 돌이킬 수 없는 지나간 청춘을 후회하기 시작합니다.
나태는 “정오의 악마”로 정의됩니다. 하루 일과 중 피로가 최고조에 이르고, 남은 시간이 따분하고 도저히 힘들 것 같아 보이는 정오쯤 우리를 찾아온다고 하여 그렇게 불렸습니다. 사막의 수도승 에바그리우스는 자신의 유명한 저서에서 이 유혹을 묘사했습니다. “게으른 사람의 눈은 계속 창문 밖을 향하고, 그의 생각은 수도원을 찾아온 사람에게 머물러 있습니다. (...) 게으른 사람은 책을 읽을 때 하품을 자주 하고, 쉽게 졸음에 빠지며, 손으로 눈을 비비고, 책 대신 벽만 쳐다보다 다시 책으로 눈을 돌려 책을 조금 읽습니다. (...) 마지막에는 고개를 떨구고 책 위에 얼굴을 파묻어 살짝 잠이 듭니다. 배고픔을 느끼거나 생리현상으로 잠이 깰 때까지 그렇게 있습니다. 게으른 사람은 하느님의 일을 신속하게 이루어내지 못합니다”.
나태에 관한 이러한 설명에서 오늘날의 독자들은 심리철학적 관점에서 우울증의 폐해를 연상시키는 무언가를 인식합니다. 실제로 나태에 사로잡힌 사람들에게는 삶의 의미도 없어지고, 기도도 지루해지며, 모든 싸움이 무의미한 것처럼 보입니다. 젊었을 때에는 열정을 가슴에 품었지만, 이제는 그것이 비논리적이고 우리에게 아무런 행복도 선사하지 않는 몽상으로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될 대로 되라며,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는 것이 유일한 탈출구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멍한 상태로 있고 싶고, 완전히 텅 빈 정신상태에 있으려는 것이죠. (…) 이는 죽음을 미리 맛보는 것과 같습니다. 좋지 않습니다.
우리가 매우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이 나태에 직면하여 영성의 대가들은 다양한 치료법을 제시합니다. 다양한 치료법 가운데 저는 제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믿음의 인내’(la pazienza della fede)라고 부르는 한 가지에 주목하고 싶습니다. 비록 나태에 빠져 있는 인간의 욕망이 현실에서 벗어나 “다른 곳”에 있으려 하더라도 우리는 나의 “지금, 여기”에, 있는 그대로의 나의 상황에서 하느님의 현존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 머물 수 있도록 용기를 내야 합니다. 수도승들은 자신들의 독방이 인생 최고의 스승이라고 말합니다. 그곳은 주님과의 사랑 이야기를 매일 구체적으로 알려주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나태의 악마는 정확히 ‘지금, 여기’에서 벌어지는 단순한 기쁨, 현실에 대한 감사의 놀라움을 무너뜨리려 합니다. 악마는 여러분으로 하여금 모든 것이 헛되고, 아무것도 의미가 없으며, 아무것도 혹은 그 누구도 돌볼 가치가 없다고 믿게 만들려 합니다. 우리는 인생에서 “지루한” 사람을 만납니다. “이 사람은 참 재미없는 사람이군!” 우리는 이렇게 생각하며 그들과 함께 있으려 하지 않습니다. 따분함을 전염시키는 태도를 지닌 사람들입니다. 이런 게 바로 나태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실체 없는 불안감에 휩싸여 나태의 손아귀에서 어리석게도 자신들이 걸어온 선의 길을 포기했는지 모릅니다! 나태와의 싸움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반드시 이겨야 하는 결정적인 싸움입니다. 나태와의 싸움은 ‘성인들도 피하지 않은 싸움’입니다. 성인들이 남긴 많은 일기에는 모든 것이 어두워 보이는 순간, 진정한 믿음의 밤에 대한 끔찍한 순간을 털어놓는 대목이 있습니다. 성인들은 ‘믿음의 빈곤’을 받아들이면서 인내심을 가지고 어두운 밤을 건너가라고 가르칩니다. 그들은 나태의 지배 아래에서도 작은 노력을 기울이고, 좀 더 도달 가능한 목표를 설정하는 동시에 유혹 속에서도 결코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는 예수님께 의지하여 나태의 악덕에 저항하며 인내하라고 권고했습니다.
믿음이 나태의 시험으로 고통받는다고 해서 그 가치를 잃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을 감추는 어둠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겸손하게 믿는 것이 참된 믿음, 바로 인간적인 믿음입니다. 그것은 잿더미 밑의 불씨처럼 우리 마음속에 잔존하는 믿음입니다. 항상 남아 있습니다. 우리 가운데 누구라도 나태의 악덕에 빠지거나 나태의 유혹에 빠지면 내면을 바라보고 믿음의 불씨를 지키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는 방법입니다.
번역 김호열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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