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풍요로움은 세상의 재물이 아니라 하느님께 사랑받는 데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10월 13일 연중 제28주일 삼종기도 훈화를 통해 예수님께 달려온 부자에 대한 마르코 복음의 구절을 풀이했다. 교황은 우리 모두가 행복을 갈망하지만 그 행복은 물질적인 부유함이 아니라 사랑을 실천하는 용기에서 비롯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그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길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고 예수님을 따르는 데 있다고 설명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 복음(마르 10,17-30)은 한 부자가 예수님께 달려와서 “선하신 스승님, 제가 영원한 생명을 받으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17절) 하고 묻는 장면을 우리에게 전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모든 것을 버리고 당신을 따르라고 초대하십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슬퍼하며 떠나갔습니다. 성경 본문은 그 이유를 “그가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22절)이라고 밝힙니다. 모든 것을 버리는 일은 큰 희생을 요구합니다. 

우리는 이 사람에게서 두 가지 움직임을 볼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예수님께 달려갑니다. 그러나 마지막에는 슬퍼하며 떠나갑니다. 처음에는 예수님께 달려가지만, 나중에는 슬픈 얼굴로 떠나갑니다. 이 부분을 깊이 묵상해 봅시다.

우선, 이 사람은 예수님께 달려갑니다. 마치 그의 마음속에서 무언가가 그를 재촉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실제로 그는 많은 재물을 소유하고 있음에도 만족하지 못하고, 마음속 깊이 자리 잡은 어떤 부족함을 채우고자 더 풍요로운 삶을 갈망하고 있었습니다. 복음에서 병자나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들이 자주 그랬던 것처럼(마르 3,10; 5,6 참조), 이 사람도 예수님의 발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그는 부자였지만 치유가 필요했습니다. 부자였지만 치유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사랑스럽게 바라보셨습니다(21절 참조). 그런 다음 그에게 “치료법”을 제시하십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고, 당신을 따르라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때 예상치 못한 결말이 나옵니다. 그 사람은 울상이 되어 슬퍼하며 떠나갑니다! 예수님을 만나려는 열망이 그토록 크고 격렬했던 만큼, 그분에게서 떠나는 모습도 차갑고 신속하게 이루어졌습니다.

우리 역시 마음속에 행복과 의미 있는 삶에 대한 억누를 수 없는 갈망을 품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때때로 그 답이 물질적인 소유나 세상의 안전함에 있다고 착각할 수 있습니다. 이와 반대로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진정한 갈망이 무엇인지 깨닫게 하십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선은 바로 하느님이시라는 것, 우리를 향한 그분의 사랑과 오직 그분만이 주실 수 있는 영원한 생명이라는 사실을 일깨워 주십니다. 참된 풍요로움은 주님께서 사랑의 눈길로 우리를 바라보시는 데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크나큰 부유함입니다. 예수님께서 그 부자를 사랑스럽게 바라보시며 모든 것을 버리고 가난한 이들과 나누라고 하신 것처럼, 우리도 서로 사랑하며 우리의 삶을 다른 이들을 위한 선물로 만드는 것이 참된 풍요로움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사랑을 위해 위험을 감수하라”고 초대하십니다. 모든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라는 것은, 우리 자신과 세상의 일시적인 안전에 의존하는 그릇된 확신에서 벗어나 궁핍한 이들을 돌보고 우리의 재물뿐 아니라 우리의 재능과 우정, 시간 등을 나누라는 의미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그 부자는 사랑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지 않았습니다. 그는 무엇을 두려워했을까요? 바로 사랑을 두려워했고, 결국 슬픈 얼굴로 떠나갔습니다. 우리는 어떤가요? 스스로에게 물어봅시다. 우리의 마음은 무엇에 집착하고 있는가? 우리는 삶과 행복에 대한 갈망을 어떻게 채우고 있는가? 우리는 가난한 사람들,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 혹은 누군가의 관심과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과 우리의 시간과 마음, 재능과 사랑을 나누고 있는가? 그들이 미소와 희망을 되찾을 수 있는 따뜻한 말을 필요로 할 때, 우리는 그들에게 다가가고 있는가? 아니면 그저 누군가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길 바라는 사람들을 외면하고 있지는 않는가? 이를 기억합시다. 참된 풍요로움은 이 세상의 재물이 아니라, 하느님께 사랑받고 그분처럼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데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 안에서 생명의 보화를 발견할 수 있도록 성모님께서 도와주시길 기도합시다.

번역 이창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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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0월 2024, 22:50

삼종기도(三鐘祈禱, 라틴어 Angelus 안젤루스)는 예수님 강생(降生) 신비를 기억하면서 하루에 세 번 바치는 기도다. (이 기도를 바치라는 표시로) 아침 6시, 낮 12시, 저녁 6에 종을 세 번씩 치면서 기도한다. 안젤루스(Angelus)라는 명칭은 라틴어로 시작하는 삼종기도 “Angelus Domini nuntiavit Mariae(주님의 천사가 마리아께 아뢰니)”의 첫 단어인 안젤루스(Angelus)에서 유래됐다. 삼종기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강생에 초점을 둔 세 개의 간단한 계응시구와 세 번의 성모송으로 구성된다. 또한 이 기도는 주일과 대축일 정오에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 모인 순례객들과 교황이 함께 바친다. 삼종기도를 바치기 전에 교황은 그날 독서에서 영감을 얻은 짤막한 연설을 한다. 기도를 바친 다음에 교황은 순례객들에게 인사한다. 주님 부활 대축일부터 성령 강림 대축일까지는 안젤루스 대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는 기도인 레지나 첼리(라틴어 Regina Coeli ‘하늘의 모후님’), 곧 부활 삼종기도를 바친다. 삼종기도는 세 번의 영광송을 바치면서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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