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는 과거의 기억에 머무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걸으시는 살아 계신 분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과거의 기억에 머무시는 분이 아니라 현재에 계시는 하느님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8월 27일 연중 제21주일 삼종기도 훈화를 통해 예수님께서 사람들이 당신을 누구라고 하는지 그리고 제자들이 당신을 누구라고 생각하는지 물으시는 복음 구절을 설명하며 이 같이 말했다. 교황은 신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자문해 보라고 초대했다. “예수님은 진정으로 내 삶에 살고 계신가? 예수님은 나와 함께 사시는가? 그분은 나의 주님이신가?”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 복음(마태 16,13-20 참조)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의미심장한 질문을 던지십니다.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들 하느냐?”(13절)

우리도 스스로에게 물어볼 수 있는 질문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에 대해 뭐라고 말하는가? 일반적으로 좋게 표현합니다. 많은 이들이 그분을 훌륭한 스승이자 특별한 인물로 봅니다. 선한 분, 의로운 분, 일관된 분, 대담한 분 등입니다. 그러나 이런 표현으로 그분이 누구인지, 무엇보다 예수님을 제대로 이해하기에 충분할까요?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만일 그분께서 단지 과거의 인물이라면 – 오늘 복음에서 인용된 세례자 요한, 모세, 엘리야, 위대한 예언자들이 당대 사람들을 위한 인물이었듯이 – 그분께서는 그저 지나간 시대의 좋은 기억에 불과할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께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즉시 제자들에게 결정적인 질문을 던지십니다. “그러면 너희는 – ‘너희’라고 말씀하십니다! –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15절) 지금 너희에게 나는 누구냐? 예수님께서는 과거 역사의 주요 인물이 되길 원치 않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여러분과 오늘 나에게 중요한 분이 되길 원하십니다. 먼 옛날의 예언자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와 가까이 계시는 하느님이 되길 원하십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그리스도께서는 과거의 기억에 머무시는 분이 아니라 현재에 계시는 하느님입니다. 그분이 그저 역사적 인물에 불과하다면, 오늘날 그분을 본받는다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고, 우리는 시간의 거대한 간극에 직면하게 될 것이며, 무엇보다도 매우 높은 산, 오를 수 없는 산과 같은 그분의 모습을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 높은 산에 오르려 하지만 역량과 필요한 수단이 부족할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살아 계십니다. 이를 기억합시다. 예수님께서는 살아 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교회 안에 살아 계시고, 세상 안에 살아 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와 동행하시고, 우리 곁에 계시며, 우리에게 당신의 말씀을 들려주시고, 당신의 은총을 베풀어 주시며, 우리 여정에서 우리를 비추시고 새롭게 해 주십니다. 노련하고 지혜로운 길잡이이신 그분께서는 가장 어려운 길과 가장 험난한 오르막길에서 기꺼이 우리와 동행하십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인생 여정에서 혼자가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베드로 사도와 다른 제자들과 함께 계셨던 것처럼 우리와 함께 계시며 우리가 걸을 수 있도록 도우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베드로 사도가 바로 이 사실을 깨닫고 은총에 힘입어 예수님을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16절)로 알아봅니다. 베드로 사도는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분께서는 과거의 인물이 아니라 그리스도, 다시 말해 고대하던 메시아입니다. 죽은 영웅이 아니라, 인간이 되시어 우리 여정의 기쁨과 고난을 함께 나누시려고 오신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때때로 그리스도인 삶의 이상이 너무 높고 그 길이 너무 가파르다고 해서 낙담하지 맙시다. 항상 예수님을 바라봅시다. 우리 곁에서 함께 걸으시고, 우리의 연약함을 받아들이시며, 우리의 수고를 함께 나누시고, 우리의 약한 어깨에 든든하고 다정한 팔을 얹어주시는 예수님을 바라봅시다. 그분을 가까이 모시고 우리도 서로에게 손을 내밀어 신뢰를 회복합시다. 우리 혼자서는 불가능해 보이는 일도 예수님과 함께라면 더 이상 불가능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과 함께라면 우리는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오늘 예수님의 입에서 나온 결정적인 물음, 곧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15절)는 질문을 되풀이해 보면 좋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너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우리에게 이렇게 물으시는 예수님께 귀를 기울여 봅시다. 그 물음을 바꿔 말하면 ‘나에게 예수님은 누구인가?’입니다. 훌륭한 인물이자 삶의 기준이지만 결코 도달할 수 없는 모델인가? 아니면 내 곁에서 함께 걸으시며 나 혼자서는 도달할 수 없는 성덕의 정상으로 나를 이끌어 주시는 하느님의 아드님이신가? 예수님은 진정으로 내 삶에 살고 계신가? 예수님은 나와 함께 사시는가? 그분은 나의 주님이신가? 나는 어려운 순간에 그분께 나를 내어 맡기는가? 나는 말씀과 성사를 통해 그분의 현존을 느끼는가? 나는 공동체 안에서 형제자매들과 함께 그분의 인도를 받을 수 있도록 나를 내어 맡기는가?

신앙 여정의 어머니이신 성모님, 당신 아드님께서 살아 계시고 저희 곁에 현존하신다는 것을 느낄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번역 이창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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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8월 2023, 11:17

삼종기도(三鐘祈禱, 라틴어 Angelus 안젤루스)는 예수님 강생(降生) 신비를 기억하면서 하루에 세 번 바치는 기도다. (이 기도를 바치라는 표시로) 아침 6시, 낮 12시, 저녁 6에 종을 세 번씩 치면서 기도한다. 안젤루스(Angelus)라는 명칭은 라틴어로 시작하는 삼종기도 “Angelus Domini nuntiavit Mariae(주님의 천사가 마리아께 아뢰니)”의 첫 단어인 안젤루스(Angelus)에서 유래됐다. 삼종기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강생에 초점을 둔 세 개의 간단한 계응시구와 세 번의 성모송으로 구성된다. 또한 이 기도는 주일과 대축일 정오에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 모인 순례객들과 교황이 함께 바친다. 삼종기도를 바치기 전에 교황은 그날 독서에서 영감을 얻은 짤막한 연설을 한다. 기도를 바친 다음에 교황은 순례객들에게 인사한다. 주님 부활 대축일부터 성령 강림 대축일까지는 안젤루스 대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는 기도인 레지나 첼리(라틴어 Regina Coeli ‘하늘의 모후님’), 곧 부활 삼종기도를 바친다. 삼종기도는 세 번의 영광송을 바치면서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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