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진성사는 교회를 떠나는 ‘이별의 성사’가 아니라 교회 내 활발한 참여의 시작을 이끄는 성사입니다”
교리 교육: 성령과 신부. 하느님 백성을 우리의 희망이신 예수님께로 인도하시는 성령
11. “그분께서 우리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고 인호를 새겨 주셨습니다.” 성령의 성사인 견진성사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 우리는 성사를 통해 교회의 삶에 함께하시며 활동하시는 성령의 현존과 그 역할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성령의 성화(聖化) 활동은 무엇보다도 ‘하느님의 말씀’과 ‘성사’를 통해 우리에게 전해집니다. 모든 성사 가운데 성령의 성사라고 불릴 만한 특별한 성사가 있습니다. 오늘은 그 성사에 대해 깊이 살펴보고자 합니다. 바로 견진성사입니다.
신약성경에는 물로 주는 세례 외에도 성령을 가시적이며 은사적으로 전달하는 또 다른 예식인 안수가 언급되어 있습니다. 이 안수 예식은 사도들이 오순절에 체험한 것과 유사한 효과를 나타냅니다. 사도행전에는 이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마리아에서 몇몇 사람들이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였다는 소식을 듣고, 예루살렘 교회가 베드로와 요한을 파견합니다. 성경은 이렇게 전합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내려가서 그들이 성령을 받도록 기도하였다. 그들이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을 뿐, 그들 가운데 아직 아무에게도 성령께서 내리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그때에 사도들이 그들에게 안수하자 그들이 성령을 받았다”(사도 8,14-17).
이와 관련하여 바오로 사도는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둘째 서간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를 여러분과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굳세게 하시고 우리에게 기름을 부어 주신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또한 우리에게 인장을 찍으시고 우리 마음 안에 성령을 보증으로 주셨습니다”(2코린 1,21-22).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주어진 ‘보증’이십니다. 그리스도께서 당신 양떼에게 성령이라는 “권위의 인장”을 찍어 주신다는 주제는 이 예식을 통해 주어지는 “지울 수 없는 인호” 교리의 바탕을 이룹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도유 예식은 독립적인 성사로 자리 잡았으며, 각 시대와 교회의 여러 전례 예식 속에서 다양한 형태와 내용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이 복잡한 역사를 여기서 모두 되짚어볼 수는 없지만, 교회가 이해하는 견진성사의 의미는 이탈리아 주교회의가 발간한 『성숙한 신앙인의 교리서』에 다음과 같이 간단명료하게 설명되어 있습니다. “견진성사는 각 신자에게 있어 온 교회가 오순절에 체험했던 것과 같은 의미를 지닙니다. (…) 이 성사는 세례 때 받은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일치를 굳건히 하고, 예언자적·왕적·사제적 사명으로 우리를 축성합니다. 견진성사는 성령의 다양한 은사를 전하며 (…) 그러므로 세례가 신앙의 탄생을 상징한다면, 견진은 신앙의 성장을 의미합니다. 그렇기에 견진은 증거의 성사로서, 그리스도인의 성숙한 신앙생활과 밀접히 연결되어 있습니다.”
견진성사가 실제로 교회의 “마지막 성사”, 교회를 “떠나는” 성사로 전락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람들이 흔히 견진성사를 “이별의 성사”로 부르는 까닭은, 많은 청소년이 견진성사를 받은 후 교회를 떠났다가 혼인할 때쯤 다시 교회로 돌아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견진성사는 교회 생활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새로운 출발점이 되어야 합니다. 현재 교회 전반의 상황을 보면 이것이 불가능해 보일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청소년이든 어른이든 모든 견진 대상자가 반드시 교회의 주도적인 역할을 맡게 되는 것은 아닐지라도, 최소한 일부는 공동체의 활동을 이끌고 지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견진성사를 준비할 때 그리스도와의 인격적인 만남을 통해 성령을 진정으로 체험한 신앙심 깊은 평신도의 도움을 받는 것이 유익할 수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어린 시절에 받은 견진성사가 시간이 지나면서 성령의 은총에 힘입어 마치 자신 안에서 새롭게 꽃피우는 것 같은 체험을 했다고 고백합니다.
하지만 이는 미래의 견진 대상자들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는 우리 모두에게, 언제나 해당됩니다. 바오로 사도는 우리가 ‘견진’과 ‘도유’와 함께 성령의 ‘보증’을 받았다고 말했는데, 다른 곳에서는 이를 “성령의 첫 선물”(로마 8,23)이라고 불렀습니다. 우리는 이 보증을 “활용”하고, 이 첫 선물을 누려야 합니다. 우리가 받은 은사와 재능을 땅에 묻어 두어서는 안 됩니다.
바오로 사도는 제자 티모테오에게 “내 안수로 그대가 받은 하느님의 은사를 다시 불태우라”(2티모 1,6 참조)고 권고했습니다. 여기서 사용된 동사 ‘불태우다’는 불꽃이 꺼지지 않도록 다시 불씨를 되살려 활활 타오르게 하는 모습을 떠올립니다. 이야말로 2025년 희년에 우리가 이뤄야 할 아름다운 목표입니다! 무심함과 침체의 재를 털어내고, 올림픽 경기의 성화 봉송자처럼 성령의 불꽃을 품고 전하는 이가 되십시오. 성령께서 우리에게 이러한 길을 걸어갈 힘을 주시길 바랍니다!
번역 김호열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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