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을 가슴속에 묻어두지 말고 세상에 전하십시오”

프란치스코 교황이 12월 11일 바오로 6세 홀에서 열린 수요 일반알현 교리 교육을 통해 총 17회에 걸친 “성령과 신부”에 관한 교리 교육 여정을 마무리했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약속에 신실하시다는 점을 강조한 교황은 하느님께서 직접 우리 마음에 넣어주신 향주덕 가운데 하나인 희망에 특별히 주목했다. 교황은 “희망은 교회가 온 인류에게 전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선물”이라며 “특히 모든 것이 어둡고 절망적으로 보여 돛을 내려야 할 것만 같은 순간에도, 우리는 희망의 등불을 더욱 높이 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교리 교육: 성령과 신부. 하느님 백성을 우리의 희망이신 예수님께로 인도하시는 성령 

17. “성령과 신부가 ‘오십시오’하고 말씀하신다.” 성령과 그리스도인의 희망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세요!

우리는 이제 성령과 교회에 대한 교리 교육의 끝자락에 이르렀습니다. 오늘은 이번 교리 교육 여정의 제목이었던 “성령과 신부. 하느님 백성을 우리의 희망이신 예수님께로 인도하시는 성령”이라는 주제를 깊이 묵상하고자 합니다. 이 제목은 성경의 마지막 책인 요한 묵시록 말씀에서 영감을 받은 것입니다. “성령과 신부가 ‘오십시오.’ 하고 말씀하신다”(묵시 22,17). ‘오십시오’라는 이 간절한 청원은 누구를 향해 울려 퍼졌을까요? 바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향한 외침이었습니다. 실제로 바오로 사도의 증언(1코린 16,22 참조)과 초대 교회의 귀중한 문헌인 『열두 사도들의 가르침: 디다케』는 초대 그리스도인들의 전례 모임에서 “마라나 타!”(Maràna tha!)라는 아람어 기도가 울려 퍼졌다고 전합니다. 이는 “주님, 어서 오소서!”라는 뜻으로, 그리스도께서 오시기를 청하는 기도입니다.

초대 교회 때부터 등장한 이 청원은 세상 마지막 날에 대한 깊은 의미를 품고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영광 중에 다시 오실 그날을 간절히 기다리는 초대 교회의 뜨거운 열망이 담겨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영적 청원과 그 안에 스며든 기다림의 영성은 교회 안에서 한 번도 사라진 적이 없었습니다. 오늘날에도 미사 중에 빵과 포도주의 축성 다음 우리는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주님의 죽음을 전하며 부활을 선포한다고 기도합니다. 교회는 지금도 주님의 오심을 깊은 믿음으로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마지막 날”에 오실 것을 기다리는 이 희망만이 전부는 아닙니다. 이 기다림에 더하여, 지금 이 순간에도 지상을 순례하는 나그네 교회 안에서 이루어지는 그리스도의 “끊임없는” 오심을 기다리는 희망이 있습니다. 성령의 숨결로 생기를 얻은 교회가 예수님께 “오소서!”라고 외칠 때마다, 교회는 바로 이 오심을 마음에 품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오소서!”, “주님, 어서 오소서!”라는 청원은 시간이 흐르면서 의미심장한 변화,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영적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이제 이 청원은 그리스도께만 향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도 드리는 기도가 되었습니다. 놀랍게도 우리의 청원을 들으시는 분이 이제는 우리가 부르며 청하는 대상이 되신 것입니다. 교회가 성령께 드리는 거의 모든 찬미가와 기도는 “오소서!”라는 청원으로 시작합니다. 성령 강림 대축일 성무일도 찬미가 ‘오소서 창조주시여’(Veni Creator)에서 우리는 “오소서 성령이여 창조주시여”(Vieni, o Spirito creatore)라고 노래하고, 성령 강림 대축일 미사 부속가 ‘성령 송가’(Veni Sancte Spiritus)에서는 “오소서, 성령님”(Vieni, Spirito Santo)이라고 청하며, 다른 많은 기도에서도 이런 방식으로 부르짖습니다. 이는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참된 “또 다른 당신 자신”이신 성령께서는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말씀하시며,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를 현존케 하시고 활동하게 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는 “앞으로 올 일들을 알려 주시고”(요한 16,13 참조), 우리가 그것들을 열망하며 기다리게 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구원 경륜 안에서 그리스도와 성령이 절대 분리될 수 없는 이유입니다. 

성령은 그리스도인의 희망이 끊임없이 솟아나는 샘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우리에게 귀한 말씀을 남겼습니다. “희망의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믿음에서 얻는 모든 기쁨과 평화로 채워 주시어, 여러분의 희망이 성령의 힘으로 넘치기를 바랍니다”(로마 15,13). 교회가 한 척의 배라면, 성령은 그 배의 돛이 되시어 과거에도 그러하셨듯이 오늘날에도 역사의 바다에서 교회를 밀어주고 앞으로 나아가게 하십니다! 

희망은 빈말이 아닙니다. 그저 모든 것이 잘되기를 바라는 막연한 소망도 아닙니다. 희망은 확신입니다. 하느님께서 당신 약속에 언제나 신실하다는 진리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까닭에 희망은 향주덕에 속합니다. 하느님께서 직접 우리 마음에 넣어 주시고, 몸소 보증하시는 은총이기 때문입니다. 이 희망은 그저 일이 일어나기만을 기다리며 앉아있는 수동적인 덕이 아닙니다. 오히려 일이 일어나도록 몸과 마음을 다해 도우며 행동하게 하는 가장 능동적인 덕입니다. 가난한 이들의 해방을 위해 온 삶을 바쳤던 한 신학자는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가난한 이들의 한맺힌 부르짖음의 근원에는 성령께서 계십니다. 성령께서는 힘없는 이들에게 새 힘을 불어넣어 주시는 분이시며, 억압받는 민중이 해방을 향해 나아가고 참된 자유를 누리도록 이끄시는 분이십니다”.

그리스도인은 희망을 가슴속에 “묻어두기”만 해서는 안 됩니다. 그 희망의 빛을 사방으로 “비추고”, 희망의 씨앗을 뿌리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희망은 교회가 온 인류에게 전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선물입니다. 특히 모든 것이 어둡고 절망적으로 보여 돛을 내려야 할 것만 같은 순간에도, 우리는 희망의 등불을 더욱 높이 들어야 합니다. 

베드로 사도는 초대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렇게 권고했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속에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거룩히 모시십시오. 여러분이 지닌 희망에 관하여 누가 물어도 대답할 수 있도록 언제나 준비해 두십시오”(1베드 3,15). 베드로 사도는 여기에 한 가지 중요한 당부를 덧붙였습니다. “온유하고 공손한 마음”으로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1베드 3,16 참조).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논리의 힘이 아니라 그 말에 우리가 담아내는 사랑입니다. 이처럼 사랑으로 전하는 것이야말로 복음화의 으뜸이자 가장 힘있는 방법입니다. 이 길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성령께서 늘 우리와 함께하시어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 안에 희망이 넘쳐흐르게” 하시기를 빕니다!

번역 김호열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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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12월 2024,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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